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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16년(933) 계사년
16년 봄 3월
신사일. 후당에서 왕경(王瓊)과 양소업(楊昭業)을 보내 왕을 책봉하고 다음과 같은 조서를 내렸다.
“군왕된 사람은 하늘을 본받아 만백성을 기르고, 땅을 본떠 천하[八紘 팔굉 동․서․남․북․동북․동남․서북․서남으로 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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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종 2년(945) 을사년
2년
○ 후진이 범광정(范匡政)과 장계응(張季凝)을 보내 왕을 책봉하고 다음과 같은 칙서를 내렸다.
“올린 글을 살펴보고 그대가 부왕의 유언과 관리들의 추대로 권지국사(權知國事)의 임무를 맡게 된 것을 다 알았다. 그대 나라[圭茅 규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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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종 즉위년(975)
겨울 10월
갑자일. 정승(政丞) 김부(金傅)의 관작을 올려 상보(尙父)로 삼고 삼고 경종 즉위년(975) 10월 김부[金傅․金溥]의 딸 헌숙왕후(獻肅王后) 김씨(金氏)를 왕비로 맞이하면서 김부를 상보(尙父)․도성령(都省令)으로 책봉한 사실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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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 2년(983) 계미년
2년 봄 정월
신미일. 왕이 원구(圓丘) 원구 원구[圜丘․園丘]․원구단(圜丘壇)․원단(圜壇)이라고도 하며, 천자나 국왕이 하늘에 제사지내던 하늘 모양의 둥근 제단이다. 정월 첫 신일(辛日)에 풍작을 비는 기곡제(祈穀祭)와 4월 중의 기우제(祈雨祭)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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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 4년(985) 을유년
4년 여름 5월
○ 송나라에서 태상경(太常卿) 왕저(王著)와 비서감(秘書監) 여문중(呂文仲)을 보내 왕의 관작을 더해주고 다음과 같은 조서를 내렸다.
“짐이 큰 강역에 있으면서 천하를 한 집으로 만들자 온 나라가 입조해 오니 이는 빈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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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 7년(988) 무자년
봄 2월
임자일. 좌보궐(左補闕) 겸 지기거주(知起居注) 이양(李陽)이 다음과 같은 봉사(封事)를 올렸다.
“첫째, 옛날의 현명한 선왕들은 하늘의 이치를 존중해 역법(曆法)상의 월령(月令)을 정했기 때문에 임금은 농사일의 고됨을 알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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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종 10년(1007) 정미년
10년 봄 2월
○ 거란이 야율연귀(耶律延貴)를 보내 왕을 수의보방추성봉성공신(守義保邦推誠奉聖功臣)․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수상서령(守尙書令) 겸 정사령(政事令)․상주국(上柱國)으로 높여 책봉하고, 식읍 7천호․식실봉 7백호를 덧붙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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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종 7년(1016) 병진년
7년 봄 정월
경술일. 거란의 야율세량(耶律世良)과 소굴열(蕭屈烈)이 곽주(郭州)(지금의 평안북도 곽산군)를 침공하자, 아군이 맞붙어 싸웠으나 수만 명의 전사자가 났으며 적은 군수물자를 노획하여 돌아갔다.
갑인일. 거란의 사신 10명이 압록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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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종 11년(1020) 경신년
11년 봄 정월
계해일. 진함조(晋含祚)를 상서우복야(尙書右僕射) 겸 도정사(都正使) 도정사 고려시대 전곡의 회계 출납을 맡아보던 재정기구 삼사(三司)가 현종 5년(1014)에 바뀐 도정사(都正司)의 정3품 사(使)를 말한다. 현종 5년(1014) 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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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종 13년(1012) 임술년
13년 봄 정월
정축일. 곽원(郭元)을 우산기상시(右散騎常侍)로, 이작인(李作仁)을 동지중추사(同知中樞事)로, 김맹(金猛)을 권지중추사(權知中樞事)로 각각 임명했다.
정해일. 흑수(黑水) 추장 사일라(沙逸羅)와 만투불(曼投弗) 등이 와서 입조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