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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 12년(993) 계묘년
12년 봄 3월
을미일. 다음과 같은 교서를 내렸다.
“임금은 하늘과 땅을 부모로 삼고 해와 달을 형과 누이로 삼아 시기에 따라 의례를 제정하여 경건히 제사를 지냄으로써 효도를 다해야 한다. 이에 따라 천자(天子)는 칠묘(七廟), 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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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 13년(994) 갑오년
13년 봄 2월
○ 소손녕(蕭遜寧)이 다음과 같은 글을 보내왔다.
“근래에 우리 황제께서 보낸 조칙은 이러합니다. ‘고려와는 일찍부터 우호관계를 맺어왔고 국경이 서로 접해 있다.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섬길 경우 합당한 규범과 의례가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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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현李齊賢의 논평
이제현은 다음과 같이 논평했다.
“성종은 종묘를 세우고 사직단을 설치했으며, 교육 재정을 확충해 선비를 양성하고 복시를 보여 어진 이를 등용했다. 지방 수령을 독려해 백성들을 구휼했고 효자와 열녀들에게 선물을 보내 미풍양속을 진작시켰다. 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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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종 9년(1018) 무오년
9년 봄 정월
초하루 을미일. 태조의 새 영정이 완성되자 사자를 서경(西京)으로 보내 성용전(聖容殿) 성용전 고려시대 서경(西京)에 있었던 전각이다. 현종 9년(1018)에 왕이 태조의 초상(肖像)을 새로 만들었기에 사신을 보내어 태조를 제사하였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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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종 10년(1019) 기미년
10년 봄 정월
신유일. 소손녕(蕭遜寧)이 신은현(新恩縣)(지금의 황해북도 신계군)까지 진군했는데, 개경과는 불과 1백 리의 거리였다. 왕은 성 밖의 민가를 성안으로 몰아넣고 적이 사용하지 못하게 들판의 곡식을 다 거두게 한 다음 적을 기다리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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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종 5년(1088) 무진년
5년 봄 정월
초하루 기유일. 신년하례 행사를 생략했다.
무오일. 요나라에서 횡선사(橫宣使)로 어사대부 야율연수(耶律延壽)를 보내왔다.
2월
갑오일. 요나라가 압록강 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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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 12년(993) 계묘년
十二年 春三月 乙未 敎曰, “朕聞, 王者父天母地, 兄日姊月, 因時制禮, 追孝敬親. 天子七廟, 諸侯五廟, 祖功宗德, 左昭右穆. 大孝感于神明, 至德動乎天地. 我國以大聖生聖, 重明繼明, 保大定功, 超今越古. 朕謬叨顧命, 纘守洪基, 遵奉祖先, 聿懷襟臆. 爰從去歲, 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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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 13년(994) 갑오년
十三年 春二月 蕭孫寧致書曰, “近奉宣命, ‘但以彼國信好早通, 境土相接. 雖以小事大, 固有規儀, 而原始要終, 須 須 『고려사』 모든 판본의 원문이 ‘회(湏)’자이나 뜻으로는 ‘수(須)’자가 옳다. 이하동일.存悠久. 若不設於預備, 慮中阻於使人. 遂與彼國相議, 便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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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현李齊賢의 논평
李齊賢贊曰, “成宗立宗廟, 定社稷, 贍學以養士, 覆試以求賢. 勵守令, 恤其民, 賚孝節, 美其俗. 每下手札, 詞旨懇惻, 而以移風易俗爲務. 及乎契丹意在呑噬, 遣將來侵, 夙駕西都, 進兵安北, 卽寇準澶淵之策也. 其欲移關防於岊嶺, 棄委積於大同, 當時庸臣之議耳, 必非成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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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종 9년(1018) 무오년
九年 春正月 乙未朔 遣使西京, 祭太祖于聖容殿, 以重新肖像也. 丙申 西女眞未閼達等七人來, 獻甲鍪及馬. 定安國人骨須來犇. 庚子 宰臣率百官上表, “請還御正殿, 復常膳.” 不允. 壬子 東女眞鋤栗弗, 西女眞阿主等四十餘人來, 獻馬及甲鍪․旗幟․貂鼠․靑鼠皮. 戊牛 群臣累請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