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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식의 논평
사관 김부식(金富軾)은 다음과 같이 논평했다.
“인종(仁宗)은 젊은 시절부터 재능이 풍부해 음악에 밝았으며 글쓰기와 그림에 능했다. 또 독서를 즐겨 손에서 책을 놓은 법이 없었으며 때로는 밤을 꼬박 새우기도 했다. 왕위에 오른 후, 명경과(明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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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종 10년(1156) 병자년
10년 봄 정월
초하루 계묘일. 신년 하례행사를 생략했다.
병진일. 연등회(燃燈會) 참석차 왕이 봉은사(奉恩寺)에 갔다.
3월
초하루 임인일. 왕이 국청사(國淸寺)에 행차했다.
임자일. 내전(內殿)에서 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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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종 12년(1158) 무인년
12년 봄 정월
갑술일. 왕이 궁궐로 돌아왔다.
2월
을미일. 왕이 흥왕사(興王寺)에 나가 머물렀다.
경자일. 왕의 거처를 천수사(天壽寺)로 옮겼다.
무오일. 왕이 궁궐로 돌아왔다.
기미일. 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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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종 14년(1160) 경진년
14년 봄 정월
초하루 경진일. 왕이 흥국사(興國寺)에 있으면서 전국의 관리들로부터 신년하례를 받았다.
임진일. 왕이 궁궐로 돌아왔다.
을미일. 연등회(燃燈會) 참석차 왕이 봉은사(奉恩寺)에 행차했다.
정유일. 왕이 보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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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식의 논평
史臣金富軾贊曰, “仁宗自少, 多才藝, 曉音律, 善晝畵. 喜觀書, 手不釋卷, 或達朝不寐. 及卽位, 聞明經申淑貧甚, 召入內侍, 受春秋經傳. 性又儉約, 嘗不豫, 宰樞入內問疾, 所御寢席, 無黃紬之緣, 寢衣無綾錦之飾. 初年, 宮中宦寺, 及內僚之屬甚多, 每黜以微罪, 不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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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종 10년(1156) 병자년
十年 春正月 癸卯朔 放朝賀. 丙辰 燃燈, 王如奉恩寺.
三月 壬寅朔 幸國淸寺. 壬子 置祈福道場于內殿. 是月, 以左承宣金存中爲太子少保.
夏四月 甲午 王如興王寺, 轉華嚴經. 初王無嗣, 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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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종 12년(1158) 무인년
十二年 春正月 甲戌 還宮.
二月 乙未 出御興王寺. 庚子 移御天壽寺. 戊午 王還宮. 己未 以仁宗忌日, 飯僧於大平亭, 時王好作佛事, 緇徒盈溢宮庭. 怙恃恩寵, 附託宦官, 侵擾百姓, 競造寺塔, 爲害日甚. 庚申 王如靈通寺.
三月 辛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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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종 14년(1160) 경진년
十四年 春正月 庚辰朔 王在興國寺, 受中外朝賀. 壬辰 還宮. 乙未 燃燈, 王如奉恩寺. 丁酉 幸普濟寺. 己亥 日中有怪氣三日. 辛丑 出御興王寺. 甲辰 龍虎軍卒張彦弑其母, 斬首梟市三日.
二月 庚戌朔 王還宮. 乙丑 出御興王寺.
三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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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숙申淑
신숙(申淑)은 고령군(高靈郡)(지금의 경상북도 고령군) 사람이다. 여러 서적을 두루 읽어 인종 때 명경과에 급제하였다. 그는 청렴 검소하고 충직하기로 이름이 났으며 여러 번 승진해 어사잡단(御史雜端)이 되었다. 의종 초 시어사(侍御史) 송청(宋淸) 송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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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함鄭諴
정함은 인종(仁宗) 때 내시서두공봉관(內侍西頭供奉官) 내시서두공봉관 문종 30년(1076)에 남반직을 관등(官等)을 하향 조정하면서 신설된 관직이다. 문종은 원래 남반 출신의 최고직이던 4품의 남반선휘사(南班宣徽使)를 폐지하고 7품의 내전숭반(內殿崇斑) 4명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