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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대金之岱
김지대(金之岱)는 처음 이름이 김중룡(金仲龍)으로, 청도(淸道)(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사람이다. 용모가 훤칠한데다 높은 기개와 큰 뜻을 지녔으며, 열심히 공부해 글을 잘 지었다.
고종 4년(1217) 강동성(江東城)(지금의 평양특별시 강동군)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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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충趙冲
조충(趙冲) 조충(1171~1220) 본관은 횡천(橫川)으로 문하시중을 지낸 조영인(趙永仁)의 아들이다. 명종 20년(1190) 과거에 급제한 후 고종 때까지 국자대사성․서북면병마사․평장사 등을 역임하였으며, 희종 5년(1209)․7년․고종 6년(121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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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적李勣
이적(李勣) 이적(1162~1225) 이적(李績)이라고도 하며, 감문위 대장군을 지내고 상서좌복야로 추증된 이준선(李俊善)의 아들로 본관은 지평(砥平)이다. 고종 때까지 동지추밀원사․추밀원사를 역임하였다. 이 집안은 이준선 때부터 중앙관료로 진출하여 이적이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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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제金希磾
김희제(金希磾) 김희제(?~1227) 김희제(金希磾)는 대몽항쟁기에 많은 공적을 세워 동북면병마사(東北面兵馬使)․서북면병마부사(西北面兵馬副使) 등을 거쳐 전라도 순문사(巡問使)에 이른 무신관료이다. 김희제는 용모가 아름답고 지혜와 용기가 있어서 최우의 신임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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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덕金應德
김응덕(金應德)은 성품이 용감하였다. 원종(元宗) 11년(1270)에 나주사록(羅州司錄)이 되었는데, 당시 삼별초(三別抄)가 반란 삼별초가 반란 원종 11년(1270) 6월 삼별초들이 개경정부에 대항하여 강화경(江華京)에서 반몽․반정부 항쟁을 일으켰던 소위 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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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유羅裕
나유(羅裕)는 나주(羅州)(지금의 전라남도 나주시) 사람으로 삼한공신(三韓功臣)․대광(大匡) 나총례(羅聰禮)의 10세손이었다. 부친 나득황(羅得璜)은 백성들을 착취한 재물로 최항(崔沆)에게 아첨해 장흥부사(長興副使)가 되었다. 최항의 농장(農莊) 최항의 농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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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천우兪千遇
유천우(兪千遇) 유천우(1209~1276) 장사 유씨[長沙兪氏․務安兪氏]의 시조이다. 처음 이름이 유량(兪亮)이며, 다시 유증(兪証)으로 고쳤다. 자는 지일(之一)이고, 호는 퇴사재(退思齋)이다. 최우(崔瑀)의 문객으로 향리 출신 신진사류였다. 신진사류들은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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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일張鎰
장일(張鎰)은 자가 이지(弛之)고 처음 이름이 장민(張敏)이며 창녕군(昌寧郡)(지금의 경상남도 창녕군)의 군리(郡吏)였다. 성품이 온순 정직했으며 글을 잘 지었고 관리로서의 재능이 뛰어났다. 고종 때 과거에 급제 급제 고종 10년(1223) 6월 지공거 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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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훤金晅
김훤(金咺) 김훤(1234~1305) 김훤(金暄)이라고도 하며, 본관은 의성(義城)이다. 호는 둔촌(鈍村)이며 족헌거사(足軒居士)라 부르기도 한다. 부친은 비서랑(秘書郞)․감찰어사 등을 역임한 김굉(金閎)이며, 모친은 검교(檢校) 대장군(大將軍) 몽양정(蒙養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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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安戩
안전(安戩) 안전(?~1298) 본관이 죽산(竹山)이며, 고종 때 과거에 급제한 후 충렬왕 때까지 시랑(侍郞)․대부소윤(大府少尹)․전라도 안찰사․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 등을 역임한 문신관료이다. 충렬왕 11년(1285) 4월에 국자시(國子試)를 주관하여 윤신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