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종 3년(1200) 경신년
3년 봄 정월
초하루 무자일. 신년 하례행사를 생략하였다.
○ 예빈소경(禮賓少卿) 백원식(白元軾)을 금나라에 보내 신년을 하례하게 했다.
기유일. 최충헌(崔忠獻)이, 전국에 수감되어 있는 죄수들을 감형시켜 주고 또한 유배 중인 죄수 가…
-
신종 4년(1201) 신유년
4년 봄 정월
초하루 임자일. 신년 하례행사를 생략했다.
2월
갑진일. 태백성(太白星)이 낮에 나타났다.
3월
초하루 신해일. 왕이 영통사(靈通寺)에 갔다.
여름 5월
경신일. …
-
희종 3년(1207) 정묘년
3년 봄 정월
○ 지난 해 겨울부터 산 서쪽에 사는 고위관리들이 많이 죽자 무반(武班)에서는 동반(東班)(문반)사람들이 저주했기 때문이라 의심하면서 자주 불만의 말을 늘어놓았다. 이에 왕이 내시(內侍)의 관원을 시켜 중방(重房)과 장군방(將軍房)에 기양…
-
희종 4년(1208) 무진년
4년 봄 2월
을묘일. 태백성(太白星)이 낮에 나타나 하늘을 가로질렀다. 태사(太史)가 다음과 같이 건의했다.
“신(辰)․사(巳)가 들어가는 해에는 명당(明堂) 명당 왕자(王者)가 정교(政敎)를 시행(施行)하는 묘당(廟堂)을 말한다. 시대에 …
-
고종 30년(1243) 계묘년
30년 봄 정월
경자일. 추밀원부사 최린(崔璘), 비서소감(秘書少監) 김지대(金之垈) 등을 몽고에 보내 특산물을 바쳤다.
2월
신해일. 태백성이 낮에 나타났다.
임술일. 연등회에서 왕이 친히 소재도량(消災道場)을 열…
-
고종 31년(1244) 갑진년
31년 봄 2월
계유일. 해당 관청에서, 전 제주부사(濟州副使) 노효정(盧孝貞)과 판관 이각(李珏)이 재임시 일본 상선이 태풍을 만나 관할 해역에서 파선하자 비단, 은, 진주 등의 값비싼 물품을 사취했다고 탄핵했다. 이에 노효정으로부터 은 28근, 이…
-
고종 32년(1245) 을사년
32년 봄 3월
갑자일. 왕이 건성사(乾聖寺) 건성사 강화경(江華京)(지금의 인천직할시 강화군)으로 천도한 이후 고종은 개경(開京)(지금의 개성직할시)의 송악산(松岳山)에 있던 건성사를 모방해 강화도에서 같은 사찰을 창건했다. 개경의 건성사 경우는 국…
-
고종 37년(1250) 경술년
봄 정월
계사일. 낭중(郞中) 최장저(崔章著)를 몽고에 보냈다.
○ 대장군 이세재(李世材)와 장군 신집평(愼執平) 신집평(?~1258) 본관은 거창이며 조부는 태자태보(太子太保) 신익(愼翼)이고 아버지는 신세공(愼世功)이다. 신세공의 처음 이…
-
고종 38년(1251) 신해년
봄 정월
초하루 임술일. 왕이 제포궁(梯浦宮)에서 홍고이(洪高伊)를 위해 잔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홍고이가 왕더러 이렇게 말했다.
“나라 북쪽 국경지대가 심하게 파괴되어 마치 울타리 없는 집과 같으니 어떻게 다시 옛 도읍으로 돌아가시겠습니…
-
고종 40년(1253) 계축년
40년 봄 정월
초하루 경진일. 신년 하례행사를 생략했다.
2월
○ 최항(崔沆)을 문하시중․판이부․어사대사로 임명했다.
○ 왕이 대궐로 돌아 왔다.
경신일. 안경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