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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종 10년(1019) 기미년
10년 봄 정월
신유일. 소손녕(蕭遜寧)이 신은현(新恩縣)(지금의 황해북도 신계군)까지 진군했는데, 개경과는 불과 1백 리의 거리였다. 왕은 성 밖의 민가를 성안으로 몰아넣고 적이 사용하지 못하게 들판의 곡식을 다 거두게 한 다음 적을 기다리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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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숙왕 14년(1327) 정묘년
여름 5월
○ 첨의중찬(僉議中贊) 김이(金怡)가 죽었다.
겨울 11월
무자일. 왕이 다음과 같은 교서 교서 이번의 교서는 심왕파의 공세를 봉쇄하기 위해 충숙왕의 원도 억류 이래 충숙왕을 지지했거나 중립적 태도를 지녔던 인물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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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종 10년(1019) 기미년
十年 春正月 辛酉 蕭遜寧至新恩縣, 去京城百里. 王命收城外民戶入內, 淸野以待. 遜寧遣耶律好德賚書, 至通德門, 告以回軍. 潛遣候騎三百餘, 至金郊驛, 我遣兵一百, 乘夜掩殺之. 丙子 東女眞酋長于那等來朝.
二月 己丑朔 丹兵過龜州, 邯贊等邀戰, 大敗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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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숙왕 14년(1327) 정묘년
十四年 夏五月 僉議中贊金怡卒.
冬十一月 戊子 敎曰, “寡人在都五年, 姦臣謀移國祚, 侍從之臣, 盡節輔佐, 終始一心, 其功可錄. 以僉議政丞尹碩, 化平君金深, 上黨君韓渥, 西河君任子松, 贊成事元忠․全英甫, 參理安文凱․李恭․崔濬, 甘泉君全彦, 豊壤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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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순식王順式 부 이총언李悤言
이총언(李悤言) 이총언(858~938) 성주 이씨(星州李氏)로, 고려 태조 때 벽진장군(碧珍將軍)으로서 벽진군(碧珍郡)의 지방세력이 되었다. 이 집안은 고려중기에 활동한 이동민(李棟民)—이승장(李勝章) 가계 및 고려후기에 중앙에 진출한 이백년(李百年)․이천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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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탁禹倬
우탁(禹倬) 우탁(1263~1342) 본관은 단양(丹陽)으로, 조부는 호장(戶長)을 지낸 우중(禹仲)이며, 부친 우천규(禹天珪)는 향공진사(鄕貢進士)를 지냈다. 이 집안은 향리 가계에서 과거를 통하여 사족화하였다. 우탁은 충렬왕 16년(1290)에 과거에 급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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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순식王順式 부 이총언李悤言
李悤言, 史失世系. 新羅季, 保碧珍郡時, 群盜充斥, 悤言堅城固守, 民賴以安. 太祖遣人, 諭以共戮力定禍亂, 悤言奉書甚喜, 遣其子永, 率兵從太祖征討. 永時年十八, 太祖以大匡思道貴女妻之. 拜悤言本邑將軍, 加賜傍邑丁戶二百二十九. 又與忠․原․廣․竹․堤州倉穀二千二百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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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탁禹倬
禹倬, 丹山人, 父天珪鄕貢進士. 倬登科, 初調寧海司錄, 郡有妖神祠名八鈴, 民惑靈怪, 奉祀甚瀆. 倬至卽碎之, 沉于海, 淫祀遂絶. 累陞監察糾正, 時忠宣蒸淑昌院妃, 倬白衣持斧荷藁席詣闕, 上䟽敢諫, 近臣展䟽不敢讀, 倬厲聲曰, “卿爲近臣, 未能格非而逢惡至此, 卿知其罪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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咸州大都督府
오랫동안 여진(女眞)이 점거하던 지역이다. 예종 2년(1107)에 원수 윤관 등에게 명하여 군사를 동원해 쳐서 쫓아버리게 했다. 3년(1108)에 주(州)를 설치하고 대도독부로 하면서 진동군(鎭東軍)이라 불렀다. 그리고 큰 성을 쌓아 남쪽 지방의 정호(丁戶)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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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상農桑
농사와 양잠은 의식(衣食)의 근본으로 정치에서 가장 우선해야 할 사항이다. 태조께서 즉위하신 초기에 먼저 온 나라에 조서를 내려 3년 동안 전조(田租)를 면제해 주시고 농사와 양잠을 권장했으며, 민들과 더불어 한 숨을 돌리시었다.
성종 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