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숙왕 후4년(1335) 을해년
후4년 여름 4월
기사일. 왕이 해주(海州)(지금의 황해남도 해주시)에서 사냥판을 벌였다.
정축일. 우문군(佑文君) 양장(梁將) 양장 후에 양재(梁載)로 개명하였다. 양재에 대해서는 『고려사』 권124, 열전37, 폐행, 왕삼석 부 양재전(梁…
-
충숙왕 후4년(1335) 을해년
後四年 夏四月 己巳 王獵于海州. 丁丑 命佑文君梁將, 前郞將曹莘卿, 掌銓注. 以姜融僉議左政丞判三司事, 蔡河中僉議贊成事, 崔老星爲懷義君, 曹莘卿爲左代言, 申時用爲大匡元尹, 尹賢爲持平. 自三月不雨, 至于是月.
五月 壬午朔 以旱, 徙市, 聚巫禱雨. …
-
신군평申君平
신군평(申君平) 신군평(?~?) 본관은 평산(平山)이며, 충숙왕~공민왕대에 대관(臺官)․좌대언(左代言)(『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우대언으로 기록되어 있음) 등을 역임한 문신관료이다. 충숙왕 12년(1325)의 개혁정치때 언론기구에 활동하면서 참여하였으며, 충목왕…
-
왕삼석王三錫 부 양재梁載
양재(梁載)는 처음 이름이 양장(梁將)이며, 연남(燕南)(지금의 중국 허뻬이성[河北省] 이남지역) 사람이다. 왕삼석(王三錫)에게 빌붙어 그 연줄로 권세를 부려 조야의 미움을 받았다. 왕삼석이 죽자, 양재는 연경(燕京)으로 돌아갔다. 충숙왕이 원나라에 갔을 때 …
-
왕삼석王三錫 부 조신경曹莘卿
조신경(曹莘卿)은 일찍이 승려가 되어 풍수(風水) 보는 일로 생업을 삼았다. 그도 양재(梁載)의 주선으로 벼슬에 올라 양재와 함께 인사 행정[銓注]을 맡았으며, 뒤에 대언(代言)까지 되어 제학(提學)을 겸직하니 사림(士林)들이 실망하였다. 왕명을 사칭해 양광도…
-
신군평申君平
申君平, 平州人, 登第, 忠肅朝爲臺官. 時賂權貴得官者幾百餘, 有崔琬者, 嘗匿父喪赴擧, 後中第, 爲水州參軍, 有穢聲, 爲同榜所斥. 倚權豪爲成均學錄, 君平皆不署告身, 又不署政丞姜融, 贊成蔡河中, 懷義君崔老星, 左代言曹莘卿, 元尹申時用, 持平尹賢告身. 以故見忤罷, …
-
왕삼석王三錫 부 양재梁載
梁載, 初名將, 燕南人. 附三錫, 夤緣用事, 朝野疾之. 三錫死, 載還燕. 及忠肅如元, 載又與蔣伯祥, 構兇謀不克, 遂諂事王左右得幸, 封佑文君. 與郞將曹莘卿, 掌銓注, 交結宦寺, 竊弄政柄, 請謁盈門, 賄賂公行. 士大夫多出其門, 以莘卿爲左代言, 崔老星懷義君, 申時用…
-
왕삼석王三錫 부 조신경曹莘卿
莘卿, 嘗爲僧, 相風水, 賣術爲生. 亦因載以進同掌選, 遂以代言帶提學, 士林觖望. 嘗矯旨, 令楊廣道貢物別監申淑, 獻熊掌豹胎, 淑督索州郡. 事聞, 王怒罷淑職, 莘卿陽若不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