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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종 4년(1001) 신축년
4년 겨울 11월
○ 왕이 중원부(中原府)(지금의 충청북도 충주시)에 행차하여 백성들의 실정을 두루 살핀 후 신하들에게 잔치를 베풀고 사면령을 내렸다. 또 호종한 관리와 통과한 주군의 관리들에게 품계를 1등급 올려주고 차등을 두어 물품을 내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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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종 4년(1001) 신축년
四年 冬十一月 幸中原府, 巡省風俗, 宴群臣, 赦. 扈從官及所歷州郡官, 加一階, 賜物有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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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금필庾黔弼
유금필(庾黔弼) 유금필(?~941) 평산 유씨(平山庾氏)로, 패강진(浿江鎭)의 본영이 있던 평주(平州)(지금의 황해북도 평산)지역의 군진(軍鎭)세력출신이다. 궁예의 축출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으나, 궁예 말년에는 왕건세력이 되어 태조 추대세력과 입장을 같이 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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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홍사崔弘嗣
최홍사(崔弘嗣) 최홍사(1043~1122) 본관은 충주이고 최홍사(崔洪嗣)라고도 한다. 삼한공신(三韓功臣)으로 태위(太尉)에 추증된 충주 최씨(忠州崔氏) 최영휴(崔英休)의 후손으로, 조부는 최공(崔光)이고 아버지는 최부(崔阜)이다. 최홍사는 문종 때 과거에 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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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금필庾黔弼
庾黔弼, 平州人. 事太祖, 爲馬軍將軍, 累轉大匡. 太祖以北界鶻岩鎭, 數爲北狄所侵, 會諸將議曰, “今南兇未滅, 北狄可憂, 朕寤寐憂懼. 欲遣黔弼, 鎭之如何?” 僉曰, “可.” 乃命之, 黔弼卽日, 率開定軍三千以行. 至鶻岩, 於東山, 築大城以居, 招集北蕃酋長三百餘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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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홍사崔弘嗣
崔弘嗣, 字國老, 中原府人. 家世單平, 少力學登科, 以文行聞. 歷拾遺․補闕, 出爲平州事, 有惠政. 累遷淸要. 肅宗朝, 授樞密院使. 奉使如宋, 忽爲颶風所飄, 舟人無不拊心泣, 弘嗣神色自若. 及至宋, 觀者稱其儀度中規. 帝厚待之, 加賜金幣, 口宣云, “顧惟樞近之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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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痾
현종(顯宗)
10년(1019) 11월 병자일. 앵계방(鸚溪坊)(개경 중부에 있던 방의 하나) 백성 최로(崔老)의 처가 아들 세 쌍둥이를 낳았다.
12년 12월 갑진일. 정융군(靜戎郡)(지금의 평안남도 순천시) 백성 원효(元効)의 처가 아들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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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石異
태조(太祖)
11년(928) 8월. 원주(原州)(지금의 강원도 원주시) 산간사(山澗寺) 철불(鐵佛)이 사흘 동안 땀을 흘렸다.
현종(顯宗)
3년(1012) 6월. 고주성(高州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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地陷
목종(穆宗)
4년(1001). 중원부(中原府) 장연현(長淵縣)(지금의 충청북도 괴산군 장연면)의 수전(水田) 3결(結)이 내려앉아 못이 되었는데 그 깊이를 측량할 수 없었다.
명종(明宗)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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恩免之制
태조(太祖) 원년(918) 8월. 왕이 다음과 같은 조서를 내렸다.
“짐이 듣건대, 옛날 한나라 고조는 항우(項羽)의 난을 수습한 뒤 산중에 숨어 목숨을 보존한 민들은 각자의 전리(田里)로 돌려보낸 다음 세금[征賦之數]를 깎아주고 줄어든 호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