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종 42년(1255) 을묘년
四十二年 春正月 己亥朔 放朝賀. 辛丑 蒙兵二十餘騎, 到甲串江外. 癸卯 被虜大丘民, 逃還言, “蒙古帝勑車羅大, 促還師, 蒙兵屯北界者, 已渡鴨綠江.” 乙卯 蒙兵百餘騎到昇天城外. 命大將軍崔瑛慰諭. 瑛自城上, 縋下酒饌犒之, 蒙兵乃去. 遣平章事崔璘如蒙古, 獻方物, 仍乞…
-
고종 43년(1256) 병진년
四十三年 春正月 癸巳朔 放朝賀. 戊戌 親設天兵神衆道場. 壬寅 樞密院副使崔坪卒. 丙午 太白書見, 經天. 丁巳 王聞蒙古兵謀攻諸島, 遣將軍李廣․宋君斐, 領舟師三百, 南下禦之.
二月 乙丑 守太師門下侍郞平章事金敞卒. 丙子 燃燈, 王如奉恩寺. 是月, 以…
-
고종 44년(1257) 정사년
四十四年 春正月 丁亥朔 放朝賀. 丙辰 宰樞議以蒙國連歲加兵, 竭力事之無益, 停春例進奉.
二月 庚午 燃燈, 王如奉恩寺.
三月 丁酉 幸賢聖寺. 甲寅 幸乾聖寺.
夏四月 丁巳 幸福靈寺. 乙丑 幸妙通寺. 丁卯 門下侍郞…
-
원종 3년(1262) 임술년
三年 夏四月 遣判秘書省事朴倫等如蒙古, 進方物.
秋七月 壬寅 朴倫還自蒙古, 帝賜王錦九匹, 詔曰, “來表稱女眞侵汝邊境, 虜掠人民事, 已聞知. 前日北鄙叛逆, 想卿已悉. 旣而, 諸王有言, ‘先以聽信一二奸人之語, 遂成過惡, 引咎請和爲辭.’ 因之按甲, …
-
최언위崔彦撝 부 최광원崔光遠
최광원(崔光遠)은 벼슬이 비서소감(秘書少監)에 이르렀다. 아들은 최항(崔沆)이며, 따로 「최항전(崔沆傳)」이 있다.
-
최승로崔承老 부 최제안崔齊顔
최제안(崔齊顔)은 현종․덕종․정종․문종의 네 왕을 섬겨 벼슬이 태사(太師)․문하시중(門下侍中)에 이르렀다. 병이 위독해지자, 문종이 친히 와서 문병하니 최제안이 조복(朝服)을 갖추어 입고 절하여 사례하였다. 이튿날 죽으니, 사흘 동안 조회를 정지했으며 시호를 …
-
최항崔沆
최항(崔沆)은 자가 내융(內融)으로, 평장사 최언위(崔彦撝)의 손자이다. 성종 때 나이 스물로 갑과에 급제 급제 성종 10년(991) 윤2월 지공거 백사유(白思柔)가 주관한 과거에 최항(崔沆)이 장원 급제한 사실을 말한다. 한편 최항이 목종 7년(1004) 4…
-
채충순蔡忠順
채충순(蔡忠順) 채충순(?~1036) 음성 채씨[陰城蔡氏․濟陽蔡氏]로, 목종~현종 때 중추원직학사(中樞院直學士)․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를 역임한 문신관료이다. 그의 선대는 음성현(陰城縣)(지금의 충청북도 음성군)지역의 토착세력으로 고려 초기부터 관료를 …
-
황보유의皇甫兪義
황보유의(皇甫兪義) 황보유의(?~1042) 영천 황보씨(永川皇甫氏)라 기록된 후대의 족보와 달리, 고려 태조 이래 왕실의 처가와 외척이 된 황보제공(皇甫悌恭)과 같은 황주 황보씨(黃州皇甫氏) 집안출신의 문신관료이다. 문연(文演)과 함께 서경세력으로 활동하였다.…
-
정세유鄭世裕 부 정안鄭晏
정안(鄭晏)은 처음 이름이 정분(鄭奮)으로, 성품이 총명하고 지혜로웠으며 젊어서 과거에 급제 급제 정안(鄭晏)이 희종 때 과거에 급제한 사실을 말한다. 한편 그는 고종 28년(1241) 4월에 동지공거로서 지공거 송순(宋恂)과 함께 과거를 주관하여 최종균(崔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