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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의 논평
사신은 다음과 같이 논평한다.
“충렬(忠烈)․충선(忠宣)․충숙(忠肅)․충혜(忠惠)의 4대는 부자지간에 서로 다투면서 심지어 원나라의 조정에 함께 송사까지 함으로써 천하 후세의 비웃음을 샀다. 아비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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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혜왕 후5년(1344) 갑신년
봄 정월
○ 왕이 원나라에 머물렀다.
○ 원나라에서 유탁(柳濯)을 합포만호(合浦萬戶)로 임명했는데 그 전에 만호(萬戶)였던 첨의상의(僉議商議) 양지수(楊之秀)는 부임하기를 꺼려 한참 뒤에야 임지로 갔으며 도내를 돌아다니며 유람만 일삼았으나 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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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의 논평
史臣贊曰, “自烈宣肅惠世歷四代, 父子相夷, 至與之訟于天子之朝, 貽笑天下後世. 且父子天性之親, 孝爲百行之先, 而政事之本也. 本旣失焉, 其他無足觀者. 忠肅晩年, 遺棄國事, 出舍外郊, 信任朴靑等三竪, 威福下移. 若子若孫, 皆罹凶夭, 可勝嘆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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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혜왕 후5년(1344) 갑신년
後五年 春正月 王在元. 元以柳濯爲合浦萬戶, 護萬戶僉議商議楊之秀不肯受代, 久而乃出, 遊于道內, 莫有問者. 戊辰 宰相會百官及國老, 欲署名, 呈省書. 國老多不至, 事竟未就. 王傳車疾驅, 艱楚萬狀. 未至揭陽, 丙子, 薨于岳陽縣. 或云遇鴆, 或云食橘而殂. 國人聞之, 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