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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종 6년(1003) 계묘년
6년 봄 정월
○ 다음과 같은 교서를 내렸다.
“옛날 우리 태조께서 전쟁을 끝낸 후 학교를 많이 개설하니 왕실의 자손들이 경전을 읽고 학습했으며, 한미한 집안의 자제들까지도 책 상자를 지고 스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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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종 12년(1009) 기유년
12년 봄 정월
경오일. 왕이 숭교사(崇敎寺)에 행차했다가 돌아오는 도중에 폭풍이 불어 일산의 자루가 부러졌다.
임신일. 왕이 상정전(詳政殿)으로 가 연등행사를 관람하고 있는데 대부(大府) 대부 고려시대 영송고(迎送庫)․국신고(國贐庫) 등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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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현李齊賢의 논평
이제현(李齊賢)이 다음과 같이 논평했다.
“경보(慶父) 경보 이름이 공중(共仲)이며, 중국 춘추시대 노나라 장공(莊公)의 친동생이다. 불의한 방법으로 노나라의 제후가 되려 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거(莒)지역으로 달아났다가 자살하였다.는 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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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종 10년(1180) 경자년
10년 봄 정월
초하루 갑인일. 신년 하례행사를 생략했다.
정묘일. 연등회 참석차 왕이 봉은사(奉恩寺)로 갔다.
경오일. 금나라가 소부감(少府監) 노공(盧珙)을 보내 왕의 생일을 축하했다.
을해일. 금나라 사신을 위해 잔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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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종 6년(1003) 계묘년
六年 春正月 敎曰, “昔我太祖, 旣偃干戈, 大開庠序, 王室宗支, 橫經問道, 蓬廬賤子, 負笈追師, 累朝以來, 才士不乏. 予謬以眇冲, 嗣守艱大, 欲廣眞儒之道, 以崇往聖之猷. 但以誨人不倦者, 靡多, 好古敏求者, 盖寡. 州鄕之內, 黌校之中, 或因小利, 或逐異端, 師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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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종 12년(1009) 기유년
十二年 春正月 庚午 幸崇敎寺, 及還, 中路暴風, 折傘盖柄. 壬申 御詳政殿觀燈, 大府油庫灾, 延燒千秋殿. 王見殿宇府庫煨燼, 悲嘆成疾, 不聽政. 王․國師二僧, 太醫奇貞業, 太卜晉含祚, 太史潘希渥, 宰臣叅知政事劉瑨, 中樞院使崔沆, 給事中蔡忠順等直宿銀臺. 知銀臺事李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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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현李齊賢의 논평
李齊賢贊曰, “慶父犯禮於魯, 不韋嫁禍於秦. 齊桓尸姜, 始皇轘毒, 何救萬世之恥哉? 穆宗不戒覆車之轍, 防閑於初, 子母俱罹其殃, 社稷幾至於亡. 鳴呼! 宣讓之不幸也, 抑非不幸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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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종 10년(1180) 경자년
十年 春正月 甲寅朔 放朝賀. 丁卯 燃燈, 王如奉恩寺. 庚午 金遣少府監盧珙來, 賀生辰. 乙亥 宴金使.
二月 壬辰 始營宮闕. 壬子 王如靈通寺.
三月 庚午 幸王輪寺.
夏五月 己巳 幸外帝釋院.
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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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운鄭世雲
정세운(鄭世雲)은 광주(光州)(지금의 광주광역시) 장택현(長澤縣)(지금의 전라남도 장흥군) 사람이다. 공민왕이 숙위(宿衛)하러 원나라에 갔을 때 호종했으며 거듭 벼슬해 대호군(大護軍)이 되었다. 왕이 즉위하자 호종한 공으로 일등공신이 되었으며, 김용(金鏞)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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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운鄭世雲
鄭世雲, 光州長澤縣人. 從恭愍, 入元宿衛, 累官大護軍. 王卽位, 錄其功爲一等, 與金鏞, 有寵於王. 楊廣道按廉 廉 『고려사』 모든 판본의 원문이 ‘광(廣)’자로 되어 있으나 ‘렴(廉)’자로 바로잡는다.金南得, 笞辱忽赤中郞將鄭谷, 谷同僚權石和等訴於王. 世雲․鏞與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