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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해尹諧 부 윤택尹澤
윤택(尹澤)은 자가 중덕(仲德)으로 세 살 때 부친을 여의었다. 일곱 살 때 배우는 글마다 바로 외우니 그가 사람을 놀라게 하는 말을 할 때마다 윤해는 “우리 가문을 일으킬 사람은 바로 너로구나!” 하며 울었다. 조금 자라자 고모부 고모부 윤선좌의 부인이 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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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부元傅 부 원호元顥
원호(元顥)는 나이 열여덟에 음보(蔭補)로 벼슬에 올라 호군(護軍)이 되었는데, 그 부친의 권세를 믿고 마구 횡포를 부렸다. 거듭 승진해 삼사좌사(三司左使)가 되고 덕녕공주(德寧公主) 덕녕공주(?~1375) 원나라 진서무정왕(鎭西武靖王) 쵸스바[焦八]의 딸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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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부元傅 부 원선지元善之
원선지(元善之)는 일곱 살에 부친의 덕으로 벼슬에 올라 서면도감판관(西面都監判官)이 되었고 여러 관직을 거쳐 좌우위(左右衛) 호군(護軍)이 되었다. 충선왕이 원나라에 있을 때 불러보고 서열을 뛰어 넘어 우부대언(右副代言)․지삼사사(知三司事)로 임명하였고 다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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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숙金之淑 부 김인연金仁沇
김인연(金仁沇)은 충숙왕(忠肅王) 때 호군(護軍)으로 있었다. 당시 왕이 참소를 입고 원나라에 억류되어 있었는데, 김인연이 경사만(慶斯萬) 경사만(?~?)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충숙왕비 명덕태후(明德太后)의 조카딸에게 장가들면서부터 궁중에 자주 드나들었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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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金怡
김이(金怡)는 자가 열심(悅心) 혹은 은지(隱之)로, 복주(福州) 춘양현(春陽縣)(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사람이다. 처음 이름은 김지정(金之琔)이었으나, 뒤에 김정미(金廷美)로 고쳤으며 충선왕으로부터 김이(金怡)라는 이름을 하사받았다. 그 모친이 난만히 붉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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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기李仁琪
이인기(李仁琪)는 계림(雞林)(지금의 경상북도 경주시) 사람이다. 성품이 관대하고 후덕하였으며 풍모가 멋졌다. 또 예법에 익숙했으며 무예로 이름을 떨쳤다. 호군(護軍)으로 있으면서 중방(重房)의 장수들이 권세를 믿고 함부로 행동하는 것을 미워한 나머지 대놓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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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정지裴廷芝
배정지(裴廷芝) 배정지(1259~1322) 본관은 대구(大邱)이다. 처음 이름은 배공윤(裵公允)이며, 자는 서한(瑞漢), 호는 금헌(琴軒)이다. 증조는 대호군에 추증된 배손적(裵孫迪), 조부는 응양군 상호군에 추증된 배인검(裵仁儉)이며, 부친은 민부전서(民部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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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륜金倫
김륜(金倫)은 자가 무기(無己)로 참리(參理) 김변(金賆)의 아들이다. 충렬왕 때 카다안[哈丹]이 침구해 오자 나라 사람들이 강화(江華)(지금의 인천광역시 강화군)로 들어가 피난하였다. 김륜의 장인 허공(許珙)이 총재(冢宰)로서 끝까지 남아 방어하게 되자 김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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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돈趙暾
조돈(趙暾) 조돈(1308~1380) 조우(趙祐)라고도 하며, 충숙왕~우왕 때 검교밀직부사(檢校密直副使)를 역임한 한양 조씨(漢陽趙氏) 집안 출신의 문신관료이다. 이 집안은 원래 한양(漢陽)(지금의 서울특별시)에 살다가 그의 할아버지 조휘(趙暉) 형제가 함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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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신(諸臣)안우(安祐)․김득배(金得培)․이방실(李芳實)
안우安祐․김득배金得培․이방실李芳實
안우(安祐) 안우(?~1362) 검교중추원사(檢校中樞院事)를 지낸 안원린(安元璘)의 아들이다. 조선 태조 때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를 지낸 영천 황보씨(永川皇甫氏) 황보림(皇甫琳)은 그의 사위였다. 『태조실록』 권6, 태조 3년 6월 기축, 지중추원사(知中樞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