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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절사 윤부가 북경에서 돌아와서 중국 관리와 일본에 대해 묻고 답한 문견단자를 가지고 입계하다.
성절사(聖節使) 윤부(尹釜)가 북경에서 돌아왔다. 예부주객청리사제독주사(禮部主客請吏司提督主事) 여전(餘田)의 체문(帖文)과 …… 문견단자【의영고(義盈庫)조선시대에는 호조(戶曹)의 속아문(屬衙門)으로, 국초부터 설치하여 기름·꿀·밀·채소·후추 등의 조달·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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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두수가 양총병을 만나 왜적에 대한 정보, 조선군의 투항설 등을 해명하다.
좌의정 윤두수(尹斗壽)가 아뢰었다.
“신이 양총병이 주둔하고 있는 구련성의 촌가에 도착하여 정문하고, 홍수언(洪秀彦)을 시켜 고하게 하기를 ‘과군은 사유격이 힘껏 싸우다가 운명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는 오로지 우리나라 때문이어서 놀랍고 애통함을 이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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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근수를 인견하고 유성룡의 군량 조달, 평양 전투, 중국군의 실정 등을 묻다.
상이 행궁의 동헌에 나아가 예조판서 윤근수(尹根壽)를 인견하였다.【승지 신점(申點)】상이 이르기를,
“풍원(豊原)이 군량과 말먹이를 준비하지도 않았는데 청병하려는 것은 어째서인가?”
하니, 근수가 아뢰기를,
“신이 안주에서 유성룡을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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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응인이 동총병을 만나 중국군의 출정을 독촉한 뒤 병력의 숫자를 보고하다.
공조판서 한응인(韓應寅)이 아뢰었다.
“신이 두 강을 건너 적강(狄江) 언덕에 이르자, 수수(水手)·나선(拿船)이 모두 저편에 있으면서 때맞춰 건너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이윽고 야불수(夜不收)야불수(夜不收)긴급한 일을 전하기 위해서, 밤에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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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 유격이 황제가 하사한 은냥을 가지고 오다.
심유격(沈遊擊)과 낭비어(郞備禦) 등 3인이 황제가 하사하는 은냥을 가지고 왔다. 대가가 의주(義州)의 서문 밖에 나가서 지영(祗迎)하고, 용만관(龍灣館) 대청 앞으로 와서 사배례를 행하였다. 예가 끝나자 막차(幕次)에 나아가 옷을 바꾸어 입고 접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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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한 훈련봉사 김호를 추증하고 대신을 인견하여 심유경의 강화회담 등을 논하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훈련봉사 김호(金虎)는 수십 명도 못 되는 군졸로 한창 기세가 오른 1백여 명의 왜적을 만나 칼날을 무릅쓰고 돌진하였으며, 직접 적장과 맞부딪쳐서는 적장의 창을 빼앗아 그 창으로 적장을 찔러 적장 3명을 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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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근수 등이 중국군이 산해관에 있는데 땅이 마르면 나올 것이라고 보고하다.
예조판서 윤근수(尹根壽)와 공조판서 한응인(韓應寅)이 아뢰었다.
“송응창(宋應昌)이 병마 70,000을 거느리고 이달 7일 중국 조정을 떠났는데, 앞서 가인(家人) 6명을 파견하여 낙참장(駱參將)의 파발이라고 명칭을 붙여 평양의 적세를 탐지한 뒤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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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근수가 낙참장을 만나 출병일시를 묻을 예정이라고 보고하다.
윤근수(尹根壽)가 아뢰었다.
“역관이 의순관(義順館)에서 와서 ‘송시랑(宋侍郞)의 파발아(擺撥兒)인 양삼(楊三)이 「길바닥이 이미 바짝 말라 군사를 진발하기에 아주 좋다. 송시랑이 산해관에서 출발하여 오게 되면 10일이면 도착하게 될 것이다.」 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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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만관에서 정문빈을 접견하고 양측의 군사 상황을 논의하다.
상이 용만관(龍灣館)에 나아가 산서노안부동지(山西潞安府同知) 정문빈(鄭文彬)을 접견하였다. 정문빈이 말하기를,
“황상께서 국왕이 천조(天朝)에 공순하다 하여 군사를 내어 구원하기로 하여 7만의 병마가 이미 산해관(山海關)을 출발하였습니다. 압록강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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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두수 등을 인견하여 심유경의 강화 노력, 조 ․ 중 합동 작전 등을 논의하다.
좌의정 윤두수, 행 예조 판서 윤근수, 우찬성 최황(崔滉), 부제학 김응남(金應南), 공조판서 한응인(韓應寅), 병조판서 이항복(李恒福), 이조판서 이산보(李山甫), 행 이조 참판 구사맹(具思孟), 대사헌 이덕형(李德馨), 병조참판 민여경(閔汝慶), 집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