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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을 탈환한 것에 대해 중국 조정에 주본을 전하다.
상이 신안관(新安館)에 행행하여 궐패를 설치하고, 백관을 거느리고 재배한 다음 영하(寧夏) 평정을 하례한 표문과 평양(平壤)을 탈환한 데 대한 주본을 사신 이조판서 한준(韓準)에게 친히 전하였다. 그 대략은 다음과 같다.
“정월 9일에 배신 제도체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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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독이 평양싸움에서 조선사람을 베어 수급을 바쳤다는 일을 해명하다.
중국의 이과급사(吏科給事) 양정란(楊廷蘭)이 상소하여 이제독(李提督)이 평양의 싸움에서 조선 사람을 잡아다 베어 수급을 바친 일을 논하자, 이제독이 글을 올려 스스로 해명하였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신이 조선에 주둔하며 군사와 말을 휴양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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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성 김우옹이 한강 방어의 계책을 아뢰다.
대사성 김우옹(金宇顒)이 아뢰기를,
“왜적의 기세가 이미 임박하였는데 서울은 넓고 커서 방어하기에 든든하지 못하니, 강 연안에 열을 지어 지키는 것이 형세상 가장 중요합니다. 따라서 안위와 성패가 강을 방어하는 데에서 결판날 것인데 다만 최원(崔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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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독 이여송이 평양에 진군하여 싸워 이긴 뒤 승첩을 상주하게 하다.
다음날【6일】진군하여 평양에 접근하였다. 제독이 대군을 서둘러 행군시키자 도원수도 제진의 군사를 합쳐 거느리고 그 뒤를 따랐다. 군사를 나누어 에워싸니 적은 성에 올라가 굳게 지키면서 모란봉(牧丹峯)을 거점으로 높은 위치에서 총을 쏘아댔다. 제독이 진정병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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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년에 사직서 참봉으로 있었던 고 동지중추부사 조공근의 훈봉을 추록하는 일을 의논하게 하다.
대신에게 명하여 고 동지중추부사 조공근(趙公瑾)의 훈봉을 추록하는 일을 의논하게 하였으나, 일이 결국 행해지지 못하였다.
애초에 임진년 4월 왜구가 서울을 핍박하였을 때 공근은 사직서 참봉으로 있었다. 정원에서 조공근과 예조판서 권극지(權克智)를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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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이 이권과 신상을 추고하라고 전교하다.
전교하였다.
“조빈(趙璸) 등의 일은 전일에 비변사가 ‘군기의 일에 있어서는 비록 작은 실수를 범했더라도 죄는 결국 마찬가지다.’ 하였기 때문에 추고해서 죄를 결정했을 뿐이다. 그런데 지금 삼공의 의논은 ‘모두 유지가 있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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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의정 남곤 ․ 우의정 이유청이 비변사의 폐지와 한성판윤의 체직을 청하다.
좌의정 남곤(南袞)·우의정 이유청(李惟淸)이 와서 아뢰기를,
“어제 간원이 ‘군기가 해이한데 대신들은 대간에게 미루고 수수방관한다.’ 했다는데 신 등은 본래 슬기롭지 못하여 군무를 알지 못하니, 조치하는 일에 미급한 것이 과연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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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현의 종사관이 대마도 승전을 고하다.
유정현의 종사관 조의구(趙義胊)가 대마도에서 돌아와 승전을 고하니, 3품 이상이 수강궁에 나아가 하례하였다. 상왕이 훈련관 최기(崔岐)를 보내어, 선지 2통을 받들고 군중(軍中)에 가서, 도체찰사 이종무에게 이르니, 그 첫째에는 이르기를,
“예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