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Here...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지원
언어 변경
...
검색
문집 & 사료 콘텐츠
한국역대문집DB
국역고려사DB
한일관계사DB
한국문집총간DB
지리역사 콘텐츠
한국지리풍속지DB
만몽지리풍속지DB
기타
지명콘텐츠
한국학 연구논문 콘텐츠
고전번역 콘텐츠
고전번역서DB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지원
언어 변경
검색
한일관계사DB
MKSDB
/
DB
/
한일관계사DB
AtoZ
가
나
다
라
마
바
사
아
자
차
카
타
파
하
#
모두
사료
경종수정실록
(0)
경종실록
(0)
고려사
(0)
고려사절요
(0)
고종실록
(0)
광해군일기
(1)
단종실록
(0)
명종실록
(0)
문종실록
(0)
삼국사기
(0)
삼국유사
(0)
선조수정실록
(0)
선조실록
(0)
성종실록
(0)
세조실록
(0)
세종실록
(0)
숙종실록
(0)
순조실록
(0)
순종실록
(0)
연산군일기
(0)
영조실록
(0)
예종실록
(0)
인조실록
(0)
인종실록
(0)
정조실록
(0)
정종실록
(0)
중종실록
(0)
철종실록
(0)
태조실록
(0)
태종실록
(0)
헌종실록
(0)
현종개수실록
(0)
현종실록
(0)
효종실록
(0)
초기화
적용
기사
19,598
한국학 콘텐츠
453
뷰어로 보기
정렬
최근 기록순
조선왕조실록
광해군일기
광해군 10년 (1618)
경상감사가 관에 머무는 왜인이 1천여 명에 이르러 접대비를 마련하기가 어렵다고 아뢰다.
〈오시에 왕이 선정전에 나아가 경상감사 박경신(朴慶新), 전라감사 이창후(李昌後)를 인견하였는데, 우부승지 이명남(李命男), 기사관 한유상(韓惟翔)·김주하(金奏夏)·신게(申垍)가 입시하였다. 왕이 이르기를, “안동과 나주가 비록 보장이 될 만하다고 ...
#박경신
#이창후
#이명남
#한유상
#김주하
#신게
#안동
#나주
#동래
#통영
#경강
#조선
#공민왕
#영남
#청주
#진주
#심돈
#김제정
#이수일
#권진
#경상도
#전라도
#호남
#조령
#하삼도
#이광
간단히 보기
뷰어로 보기
1
총 1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