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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엽2017本稿は、第11次朝鮮通信使(宝暦甲申信使。以下、通信使)の48種の筆談唱和集を対象に当時の筆談の様子を検討し、通信使の筆談交流の特徴とその意義を明らかにすることを目的とする。この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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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선2014인문사회과학연구병자호란 이후 청나라에 조공(朝貢) 관계를 맺고도, 조선 문인들은 청나라를 중화(中華로) 여기지 않았다. 그랬기에 연행(燕行) 초기에는 기록을 별로 남기지 않았으며, 북경(北京)에 가서도 그곳 지식인들과 한시를 주고받거나 필담(筆談)을 나누지 않았다. 1765년의 홍대용(洪大容), 김재행(金在行)이나 1780년의 박지원(朴趾源)에 와서야 청나라 지식인들과 필담을 나누거나 면지를 주고받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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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정2010韓國文學論叢본 고는 1881년 조사시찰단으로 파견된 최성대와 일본인 한학자 미시마 추슈, 카와키타 바이잔 간에 이루어진 필담록을 간단히 소개하고자 하였다. 최성대는 사법제도의 시찰을 담당한 조사 엄세영의 수행원이었기에, 사법관에 종사했던 미시마와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 필담은 전근대에서 근대로 이행하던 당대 동아시아의 지식 인 간에 발생한 인식의 차이를 그대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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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2009아시아문화연구Shen Cuiwei, the person we research in this paper, was a scholarbureaucrat in the later of Lee Dynasty. He once came to China twice as ambass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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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승택2006한국문화연구20세기 동아시아 각국에 근대국가가 설립하기 이전 동아시아 지식인들은 자국어 이외에도 한문(漢文)이라는 공통문어(共通文語)를 습득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들은 외교의 현장에서 마주쳤을 때 통역의 개입 없이도 의사소통에 별다른 지장을 받지 않았다. 그들은 필담(筆談)을 통하여 의견을 교환하고 화답시(和答詩)를 통하여 자신의 입장이나 감정까지도 무리 없이 전달할 수 있었다. 그들은 또 일정한 유교적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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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태문2006열상고전연구通信使는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 조선의 왕이 일본의 幕府 將軍에게 보낸 信義의 외교사절로, 그 이면엔 양국간 다양한 문화교류가 이루어져 한일 문화교류의 공식통로 역할을 수행했다. 이 글은 통신사를 통한 양국 문화교류의 구체적인 양상을 일본 岡山縣을 중심으로 살핀 것이다. 통신사를 통해 양국간 문화교류가 활발하게 전개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통신사가 지닌 문화사절단으로서의 성격과 쇄국체제하 일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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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석2006한국문화연구이 논문은 최부(1454~1504)가 지은『표해록』(1488)의 중국 체험 부분을 기행문이라는 문학적 텍스트로 연구한 것이다. 『표해록』은 그동안 역사적 텍스트로 연구되어 왔지만, 최부 일행 43명이 제주에서 육지로 향하다가 표류하여 중국 강남 지역에 이른 뒤, 북경을 경유하여 조선으로 돌아온 내용을 담고 있는 문학적 텍스트이기도 한 것이다. 문학적 텍스트로 보면서 필자가 중시한 것은 당시 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