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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강에 ≪강목≫을 강하고 북변과 왜적의 대비에 대해 의논하다.
석강에 있어 ≪강목≫의 ‘동시월(冬始月)’부터 ‘종회(鍾會)를 사도로 삼았다.’ 는 대목까지 진강하였다. 임문하여 상이 변협(邊恊)에게 이르기를,
“병가에서 주객의 형세가 같지 않다고 하는데, 촉한(蜀漢)으로써 본다면 같지 않은 점이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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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대도감이 유총병의 차관 나사괴 등을 만나 논의한 내용을 아뢰다.
접대도감(接待都監)이 아뢰었다.
“유총병(劉總兵)의 차관(差官) 나사괴(羅四魁)·서의(徐義) 등에게 역관을 시켜서 재삼 도감에 초청하였는데도 끝내 오려고 하지 않으므로 어둘 무렵에 도감낭청 이철(李鐵)로 하여금 그들의 하처(下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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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의정 이항복이 왜적의 침입에 대한 방비책을 논하는 차자를 올리다.
6692. 좌의정 이항복이 왜적의 침입에 대한 방비책을 논하는 차자를 올리다.
좌의정 이항복(李恒福)이 차자로 아뢰었다.
“신은 상심이 누적되어 질병이 되었고 그 질병이 오래되어 고질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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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 조익이 균역법이 시행된 후, 폐지된 배를 점검하는 법의 회복을 상소하다.
유학 조익(趙山翌)이 상소하기를,
“…… 남로는 왜인이 임진년에 먼저 조령으로부터 왔으므로 성을 조령에 쌓았고 동래 · 부산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그러나 왜선이 경유하는 길은 한 곳에 그치지 않습니다. 오도에서 삼도까지 와서 밤을 새우고 선산도를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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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정이 재판왜가 대마도주의 아들 언만의 아명도서를 받기 청하는 것에 대해 아뢰다.
차대하였다. 영의정 남공철(南公轍)이 아뢰기를,
“동래부사 이규현(李奎鉉)의 장계에 훈도와 별차 등의 수본을 낱낱이 들면서 말하기를, ‘작년 겨울에 나온 재판왜가 대마도주의 아들 언만(彦滿)의 아명도서(兒名圖書)를 받기를 청하는 일로 해가 넘도록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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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강에서 영사 김근사 등이 가덕도의 진설치와 대포 등지의 봉수 설치에 대해 논하다.
조강에 나아갔다. 영사 김근사(金謹思)가 아뢰기를,
“가덕도(加德島)에 진을 설치하는 일은 조윤손(曹閏孫)이 지난번 그 곳에 내려 갈 적에 가서 살펴보고 조치하도록 하였다가 대간이 안 된다고 하여 중지하였습니다. 가덕도는 신이 가보지는 못하였으나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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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순손이 미조항 등에 관원 보낼 것을 청하니 유시만 내리게 하다.
병조판서 장순손(張順孫)이 아뢰기를,
“미조항(彌助項)·방답(防踏)·가리포(加里浦) 등에 이미 성을 쌓도록 하였는데, 그곳은 긴요한 방어지입니다. 그러므로 관원을 보내어 적간하도록 하거나 유시를 내려야만 그 도에서 반드시 변방을 중시한다는 뜻을 알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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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에 나갔던 어사 윤지형이 들어와 전주 등지의 범법을 서계하다.
전라도에 나갔던 어사 윤지형(尹止衡)이 들어와, 전주(全州) 등지의 범법을 들어 서계하기를,
“달량성(達梁城)은 견고하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산허리에다 성을 쌓아, 만일 적이 성 뒷산의 정상에 올라간다면 성 안을 내려다보게 되어 있습니다. 또한 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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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헌부가 전라도의 회령포와 가리포에 침노한 왜노를 막지 못한 변장을 가두어야 한다고 아뢰다.
대간이 전의 일을 아뢰고 헌부가 아뢰기를,
“전라도의 회령포(會寧浦)와 가리포(加里浦)에 왜노가 침범하여 여러 날 접전하는데, 그들은 한 명도 사로잡거나 베지 못하고 있습니다. 변장이 소수의 적을 만나서도 오히려 이처럼 겁을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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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형 ․ 정광필 ․ 최한홍 등이 왜구침구에 대한 대비를 위해 수전과 수성에 대한 것을 아뢰다.
조강에 나아갔다. 시독관 윤지형(尹止衡)이 임문하여 아뢰었다. …… 김극성(金克成)이 또 아뢰기를,
“…… 또 남쪽 변방의 일로 말하면, 너무 해이하여 질서가 없으니 매우 불가한 일입니다. 군령이 본디 정해졌다면, 왜선 10여 척쯤이야 족히 걱정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