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Here...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지원
언어 변경
...
검색
문집 & 사료 콘텐츠
한국역대문집DB
국역고려사DB
한일관계사DB
한국문집총간DB
지리역사 콘텐츠
한국지리풍속지DB
만몽지리풍속지DB
기타
지명콘텐츠
한국학 연구논문 콘텐츠
고전번역 콘텐츠
고전번역서DB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지원
언어 변경
검색
한일관계사DB
MKSDB
/
DB
/
한일관계사DB
AtoZ
가
나
다
라
마
바
사
아
자
차
카
타
파
하
#
모두
사료
경종수정실록
(0)
경종실록
(0)
고려사
(0)
고려사절요
(0)
고종실록
(0)
광해군일기
(0)
단종실록
(0)
명종실록
(0)
문종실록
(0)
삼국사기
(0)
삼국유사
(0)
선조수정실록
(0)
선조실록
(1)
성종실록
(0)
세조실록
(0)
세종실록
(0)
숙종실록
(0)
순조실록
(0)
순종실록
(0)
연산군일기
(0)
영조실록
(0)
예종실록
(0)
인조실록
(0)
인종실록
(0)
정조실록
(0)
정종실록
(0)
중종실록
(0)
철종실록
(0)
태조실록
(0)
태종실록
(0)
헌종실록
(0)
현종개수실록
(0)
현종실록
(0)
효종실록
(0)
초기화
적용
기사
19,598
한국학 콘텐츠
453
뷰어로 보기
정렬
최근 기록순
조선왕조실록
선조실록
선조 32년 (1599) 4월
비변사가 장사꾼들이 군병이 주둔하는 곳에 들어와 장사하는 폐단에 관해 아뢰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당초 양경리(楊經理)가 중국 군사들이 먼 길을 나와 모조리 잔파된 무인지경에 머물기가 고통스러울 뿐만 아니라 일용품 따위와 의복과 음식물에 있어서도 비록 월은(月銀)을 갖고 있지만 갑자기 사서 쓸 수가 없으...
#양경리
#중국
#요동
#황해
#경기
#충청도
#한동지
#아산
#공관
#용안
#지세포
간단히 보기
뷰어로 보기
1
총 1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