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관을 짓는 역사에 선방군 200명과 호남의 승군을 부역하게 하다.
    경상도 관찰사 김덕원(金德遠)이 장계하기를, “왜관을 새로 짓는 역사는 갖가지의 역군이 50여 만명이나 되어야 하니, 호남의 각 고을 중에 영남과 거리가 멀지 않은 곳의 승군을 갈라주어 부역하게 하소서.” 하고, 또 도내 각 진포의 선방군을 ...
  • 왜관에 불이 나서 왜인들이 무역한 곡식 340여 석이 타버렸으므로 공미 50석을 내려주다.
    동래부사(東萊府使) 이복(李馥)이 장계하기를, “왜관에 불이 나서 동쪽 행랑 20칸이 타고 선창에도 불이 번져 왜인들이 무역한 곡식 수천석을 선창에 실어다 놓았다가 타버린 것이 340여 석이나 되고, 병든 왜인 1인이 놀라움으로 인해 죽었습니다.” ...
  • 동래부사와 경상도 관찰사의 장계에 따라, 왜인에게 빚을 진 윤금선 등 3인을 효시하다.
    동래부사(東萊府使) 이복(李馥)과 경상도 관찰사 김덕원(金德遠)의 장계에 따라, 왜인에게 빚을 진 사람 윤금선(尹今善) 등 3인을 효시하였다.
  • 공조판서 권유의 청에 따라, 황석산성을 지키다가 순국한 고 현감 곽준에게 정경을 증직하다.
    대신들과 비국의 여러 재상들을 인견하고, 총융청(摠戎廳)에 1년 동안 주전을 윤허했다. 당초에 영중추부사 김덕원(金德遠)이 사장에서의 열무 때 총융청은 물력이 피폐하므로 조정에서 마땅히 진념하여 세를 거두어야 함을 극력 말하고, 총융사 장희재(張希載)가 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