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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감사 ․ 절제사 등이 병선을 초량으로 옮겨 정박시키는 것에 대해서 아뢰다.
전라도 감사․절제사․처치사 등이 계하기를,
“신 등이 명령을 받들어 좌도도만호(左道都萬戶)가, 여도(呂島)에 정박된 병선을 초량(草梁)으로 옮겨 정박하고, 영전(營田)은 좌개평(佐介平) 등지로 옮기는 것의 편리함과 불편함을 친히 살펴보니, 초량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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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가 조선과 통호하고 천조에 조공 바치기를 원한다고 이시언이 치계하다.
경상감사 이시언(李時彦)이 치계하였다.
“선유격(單遊擊)이 초량(草梁) 언덕 위에 장막을 치고 수륙군을 벌여 놓고 귤왜(橘倭)를 불러내어 묻기를 ‘너는 무슨 일로 이처럼 왕래하는가?’ 하니, 지정(智正)이 대답하기를 ‘하나는 송운(松雲)을 호송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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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관을 초량포에 이전하도록 하다.
대마주의 차왜가 아직도 부산관에 머물고 있으면서 관을 옮겨 달라고 강력하게 청하였으나 조정에서 허락하지 않았다. 차왜 등이, 청한 바를 굳게 막아버린 우리 조정의 서계를 보고는 성을 내고 펄쩍 뛰면서 서울에 올라가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행구를 준비해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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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좌수사 이상집이 동래 왜관의 훈도와 별차들의 논죄를 청하다.
왜인이 초량촌(草梁村)에서 옮겨간 후 여염에 왕래할 수 없게 되자, 아침에 저자가 설 때마다 우리나라 남녀들이 섞여 가면 남자들이 가진 것은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하더라도 팔리지 않고, 여인들이 가진 것은 비록 나쁜 것이라 하더라도 꼭 팔리기 때문에, 아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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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 오명항이 ≪징비록≫이 왜국에 들어갔다고 하여 과조를 세워 금단하도록 청하다.
주강에 나아갔다. 교리 오명항(吳命恒)이 문의로 인하여 진달하기를,
“통신사가 전하는 바를 듣건대, 고 상신 유성룡(柳成龍)이 지은 ≪징비록(懲毖錄)≫이 왜국에 흘러 들어갔다고 하니, 일이 지극히 놀랍습니다. 엄격하게 과조를 세워 달리 금단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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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암행어사 이병상이 초량에 성을 쌓고, 저자를 성 밖으로 옮길 것 등을 청하다.
비변사에서 경상도 암행어사 이병상(李秉常)의 서계로 본도의 도신(道臣)과 수신(帥臣) 및 동래부로 하여금 초량(草梁)의 서쪽과 남쪽 두 곳에 성을 쌓아 해안에 이르게 하고, 저자를 성 밖으로 옮겨 잡인을 금지하며, 왜인을 연향할 때 여악을 파할 것을 의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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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부사가 왜인 접대에 먼저 진상 숙배하는 등의 예를 행하도록 청하다.
동래부사 조영복(趙榮福)이 장계로 말하기를,
“대소 차왜들이 우리나라에 나올 적에 먼저 하선연을 행하여 먼길을 온 것을 위로하는데, 왜인들은 즉시 초량(草梁)에 와서 전패(殿牌)전패(殿牌)각 고을의 객사(客舍)에 ‘전(殿)’자를 새겨서 세워둔 나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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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사직 윤면동이 초량에 있는 소통사들로 인해 왜노들이 쉽게 실정을 엿본다고 아뢰다.
부사직 윤면동(尹冕東)이 상소하기를,
“…… 영남은 추로(鄒魯)추로(鄒魯)공자는 노(魯)나라 사람이고 맹자는 추(鄒)나라 사람이라는 데서 '공자와 맹자'를 가리켜 이르는 말.의 고장으로 일컬어지고 있습니다만 불행하게도 이도현(李道顯)·이응원(李應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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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왜 등이 통신사의 일을 허락하지 않자 관왜를 거느리고 나와 초량에 이르르다.
차대하였다. 좌의정 이시수(李時秀)가 아뢰기를,
“동래부사 오한원(吳翰源)의 장계에 이르기를, ‘차왜 등이 통신사의 일을 허락하지 아니함으로 인해 딱한 정상을 가서 호소하려 한다고 핑계대면서 관왜를 많이 거느리고 함부로 설치된 문을 나와 초량(草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