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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정 유상운이 안용복은 도해역관이 돌아온 뒤에 처단하여야 한다고 아뢰다.
대신과 비국의 제신을 인견하였다. 영의정 유상운(柳尙運)이 말하기를,
“안용복(安龍福)은 법금을 두려워하지 않고 다른 나라에서 일을 일으켰으므로, 죄를 용서할 수 없습니다. 또 저 나라에서 표해인을 보내는 것은 반드시 대마도에서 하는 것이 규례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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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첨사 이석이 증조부 이대원이 임진왜란 때에 죽은 것을 이유로 체임되기를 청하다.
대신과 비국의 여러 신하들을 인견하였다. …… 윤지선(尹趾善)이 말하기를,
“부산첨사 이석(李錫)이 그의 증조부 이대원(李大源)이 임진왜란 때 전투하다 죽었다는 것으로 소장을 관에 올려 체임되기를 비는데, 정리로 보아서는 진실로 차마 하지 못하겠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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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의정 최석정이 왜관에 머무르고 있는 왜인의 수가 점점 많아지므로 돌려보내도록 아뢰다.
대신과 비국의 여러 신하들을 인견하였다. 이 때에 평안감사 이징명(李徵明)과 전라감사 김우항(金宇杭)이 모두 외람되게 가족을 데리고 부임하였다고 자수하자, 우의정 최석정(崔錫鼎)이 체직시켜 바꾸면 폐단이 있다는 이유로 종중 추고할 것을 청하고, 또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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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부사 황일하가 왜인이 공작미를 받기 위해 관소에 머물러 떠나지 않는다고 계문하다.
왜인이 공작미를 허락받는 일 때문에 관소에 머물러 있으며 떠나지 않으므로, 동래부사 황일하(黃一夏)가 계문하였다. 대신에게 의논하니, 서문중(徐文重)은 말하기를,
“한때 변통한 일이 백년의 큰 폐단이 되었습니다. 차왜가 관소에서 지체하며 해를 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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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정 최석정이 관백 및 대마도주에게 문위할 일을 양도로 나눌 것을 청하다.
영의정 최석정(崔錫鼎)이 여러 재신들과 함께 청대하니, 임금이 인견하였다. 최석정이 나아가 말하기를, …… 전에는 왜인의 관백(關白) 및 대마도주에게 우리가 문위할 일이 있으면 한 가지 글로 문위하고 일찍이 별폭으로 하지 않았다. 그런데 요사이 와서 왜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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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정 최석정이 왜인과 촌녀가 간통한 사건에 대해 아뢰다.
대신과 비국의 여러 신하들을 인견하였다. …… 최석정(崔錫鼎)이 말하기를,
“동래부사 한배하(韓配夏)의 장계를 보니, 왜인과 촌녀가 서로 간통하였는데, 촌녀와 동정한 사람이 신문을 기다리지 않고 솔직이 공초하여 왜관에 말하니, ‘범간한 일이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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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순국한 고 안음현감 곽준에게 특별히 시호를 내려주다.
대신과 비국의 여러 신하들을 인견하였다. 예조판서 조상우(趙相愚)가 아뢰기를,
“고 안음현감 곽준(郭䞭)은 정유년의 왜란을 당하여 이때 황석산성(黃石山城)을 지키다가 산성이 함락되자 자신이 순국하였습니다. 그의 두 아들도 그 아비를 보호하여 가리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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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관조시의 시간을 이른 아침으로 한정하고 쌀의 거래를 허락하다.
대신과 비국의 제신을 인견했다. …… 당초에 동래의 왜관에 단지 오일 개시만을 허급하였다가, 본도의 장계에 따라 그 뒤에 조시를 보도록 하되 단지 어물과 채소의 교역만 허락하고 쌀의 교역은 허락하지 않았는데, 왜인들이 말하기를,
“저희들의 생활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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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왕호복고 요청에 대해 대신들과 의논하였는데, 국서를 고치어 보내도록 하다.
대신과 비국의 제신을 인견하니, 영의정 서종태(徐宗泰)가 왜인의 서계 중에 왕호를 복구하기를 청한 일을 가지고 아뢰기를,
“국왕으로 썼던 것이 이미 구식이었으니, 예전 것을 따라서 개서하기를 청한 것은 참람한 호칭은 아니며, 또 만서(嫚書)와도 다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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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통신사 조태억 등의 죄를 논의하여 관작을 삭탈하여 문외 출송하라고 명하다.
이보다 앞서 통신사 조태억(趙泰億) 등 세 사람이 의금부에서 공초를 바치기를,
“범휘(犯諱)에 관한 한 가지 사실은 차라리 우리 쪽에서 먼저 고쳐 잘못을 저 사람들에게로 돌려서 저 사람들이 할 말이 없게 했어야 할 것이었으며, 서식을 고쳐 보내는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