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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우정에 거둥하여 새로 제조한 전함을 관람하다.
희우정(喜雨亭)에 거둥하여 새로 제조한 전함을 관람하니, 왕세자가 거가를 호종하였다. 처음에 유구국(琉球國) 사람이 우리나라에 오매, 그에게 명하여 전함을 제조하게 하고는, 이를 서강에 띄우고 우리나라의 전함과 나란히 달려서 그 쾌둔의 정도를 비교한바,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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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국에서 대마주로 잡혀 간 문성기를 찾아 귀환하게 하다.
예조에서 대마주태수 종정성(宗貞盛)에게 글을 보내어 본국에서 잡혀 간 사람 문성기(文成奇)를 찾아내어 귀환하게 하였다. 성기는 본시 충청도 은진(恩津)사람으로 마량포(馬梁浦) 선군(船軍)에 입속되어 진무가 되었다가 지난 기해년에 왜적이 침입해 왔을 때,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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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형 ․ 남세담 등과 대마도에 조관을 보내는 일에 대해 논쟁하다.
경연에 나아갔다. 강하기를 마치자, 지평 강형(姜詗)이 아뢰기를, ……
강형이 아뢰기를,
“옛날 왜인이 우리 백성을 죽였는데 그 때 장차 고태필(高台弼)을 보내어 유시하려고 하였으나 적국이 아니기 때문에 다만 서계로 통지하였을 뿐입니다.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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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근수가 경성으로 진격하기를 청하며 경략에게 자문을 올리다.
예조판서 윤근수(尹根壽)가 경략에서 상서하였다.
“우리나라가 군량과 마초를 미처 운송하지 못하여 경성 가까이 진군한 중국의 병마가 굶주림을 이기지 못하여 개성으로 물러났습니다. 국왕께서는 이 소식을 들으시고 깜짝 놀라 급히 배신을 보냈습니다. 친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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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들과 함께 양경리가 참소당한 사정과 중국에 보낼 자문에 대해 논의하다.
상이 별전에 나아가 대신 및 비변사의 유사당상을 인견하였는데, 영의정 유성룡(柳成龍), 해원부원군 윤두수(尹斗壽), 행지중추부사 정탁(鄭琢), 좌의정 이원익(李元翼), 우의정 이덕형(李德馨), 호조판서 한응인(韓應寅), 병조판서 이항복(李恒福), 좌승지 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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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와 최영이 군사를 징발하여 덕적도 등의 왜적을 방비하다.
신우(辛禑) 원년(1375) 을묘 9월, 왜적의 배가 덕적도(德積島)·자연도(紫燕島) 두 섬에 많이 모이니, 우왕(禑王)은 여러 도의 군사를 징발하여 태조와 판삼사사(判三司事) 최영(崔瑩)으로 이를 거느리게 하고, 동강(東江)과 서강(西江)에 군대의 위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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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적이 강화부에 침입하니, 태조가 서강에서 군사력을 시위하다.
신우(辛禑) 3년(1377) 정사 3월, 왜적이 강화부(江華府)에 침구하니 서울이 크게 진동하였다. 태조와 의창군(義昌君) 황상(黃裳) 등 11원수(元帥)를 시켜 서강(西江)에 군대의 위엄을 보이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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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와 최영이 해풍군에서 왜를 물리치다.
신우(辛禑) 4년(1378) 무오 4월, 왜적의 배가 착량(窄梁)에 많이 모여 승천부(昇天府)승천부(昇天府)경기도 강화로 들어와서 장차 서울을 침구하겠다고 소문을 내니, 중앙과 지방이 크게 진동하였다. 병위(兵衛)를 대궐 문에 배치하여 적군이 이르기를 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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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추원사 이무에게 왜구를 방비케 하다.
중추원사(中樞院使) 이무(李茂)에게 명하여 서강(西江)의 군선(軍船)을 점검하여 왜구를 방비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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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호 인당과 이권으로 서강에 주둔하여 왜구를 방비하게 하다.
만호 원호(元顥)를 서북면에 파견하고 만호 인당(印璫)과 전 밀직 이권(李權)으로 서강(西江)에 주둔하여 왜구를 방비하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