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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丙哲2010남명학연구老柏軒 鄭載圭(1843-1911)는 1885년 后山 許愈와 함께 南冥의 講學處인 雷 龍亭을 중건하여 南冥의 유적이 복원되고 南冥學이 천양되도록 노력하였다. 1887년에는 8월 18일부터 28일까지 10박 11일의 기간 동안 智異山을 등람하 면서 남명에 대한 추념과 경모를 가졌으며, 자신의 학문과 삶이 새롭게 진작되 는 계기로 삼았다. 그리고 1889년 后山 許愈가 남명학의 핵심을 분명하게 드러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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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국2008남명학연구이 글은 지리산의 역사적 성격의 변화에 초점을 두고 名山文化로서 智異山의 正體性을 조선 초・중기의 문헌사료를 통해서 구명한 것이다. 먼저 명산은 인간 이 인위적으로 창출하고 결정한 의미에 의해서 규정・이해되는 것이다. 그러므 로 명산은 고정되는 경우보다 변화를 겪는 존재로서 사회적 생산물의 성격을 갖고 있어 문화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명산문화는 명산이 의미하는 바의 정체성까지 수렴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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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浩鎭2008남명학연구文劼은 어려서부터 문명을 떨쳐 소년시인이라 일컬어질 정도로 뛰어난 시 작 품을 남겼고, 정유재란에 하수일과 의병을 일으켜 하동의 악양에서 활동함으로 써 이들 덕분에 이 지방이 온전하였다는 평과 조정의 상을 받기도 하였다. 文弘 運은 아버지를 따라 악양에 있다가 아버지가 병사함에 전란의 와중에서도 장례 를 치루고 그 이후로는 유거하며 지냈으며, 그가 남긴 「頭流八仙遊篇」은 지리 산 연구에 중요한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