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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명2021한일관계사연구이 글은 일본제국주의 지배 하 식민지 조선에서 일어난 테니스의 문화 접변을 분석하였다. 테니스의 문화접변은 경식정구에서 연식정구로 변화해갔는데 구체적인 접변과정은 다음과 같다. 구평형은 경식정구로 1900년대 초반 주로 경성에 거주하던 소수의 외국인과 조선인 개화파와 학생들을 중심으로 행해졌다. 이후 점차 늘어난 재조일본인들이 연식정구를 선호하고 경식정구에 필요한 고비용과 기술적 어려움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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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미나2019한일관계사연구1920년대 일본의 ‘데모크라시’의 흐름 속에 천황제와 국민 통합에 위기를 느낀 일본 정부는 ‘한학 진흥책’을 통해 ‘천황에 효’를 다하고 국가에 ‘충’을 바치는 ‘국민도덕’을 강화시켰다. ‘대동문화학원’의 설립과 황도유학을 기본으로 한 ‘일본 유교’란 개념은 이러한 사회적 배경으로 전개됐다. 1930년대 일본제국주의가 만주로의 확대를 꾀하면서 ‘황도유학’은 ‘동양도덕’이란 이름으로 식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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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명2018한일관계사연구본고는 아시아·태평양전쟁기 일본제국주의가 식민지 조선에서 「내선일체」의 실현을 지배 목표로 내걸고 조선인을 전쟁에 동원하기 위해 다양한 시책들을 실시하는 데에 상응해서 도회가 어떻게 변용되어갔는지를 분석했다. 구체적으로는 경상남도회를 사례로 선거와 구성, 그리고 도회 회의의 실제를 밝혔다. 특히 1938년부터 1943년까지의 경상남도회 회의록을 통해 도회 회의의 진행과 심의를 주로 형식적인 측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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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명2018한일관계사연구본고는 일본제국주의 지배 하 식민지 조선에서 일어난 벚꽃의 문화접변을 분석했다. 벚꽃의 문화접변은 1910년을 전후해서 우이동을 중심으로 정착한 벚꽃구경이 1924년 이후 창경원의 벚꽃놀이로 변화해갔는데 구체적인 접변과정은 아래와 같다. 구평형은 1910년대 우이동의 벚꽃구경으로, 도심에서 떨어진 벚꽃 밀집지역에 많은 사람들이 여러 교통수단을 이용해 낮에 모여 자연경관의 벚꽃을 즐기는 상춘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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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영2016한일관계사연구조선은 효행을 표창하면서 백성을 교화시키고 이를 근간으로 국가를 운영해 나갔다. 본고에서는 일제강점기 효행표창의 현황과 성격을 살펴보았다. 이를 위해 효행표창기관의 변화, 일제강점기 효행표창현황, 효행 유형을 분석하였다. 첫 번째로 한말 관제개혁 이후 효행표창기관의 변화과정을 살펴보았다. 본래 효행표창은 예조에서 담당하였는데, 1894년 관제개혁이 이루어지면서 종백부로 예조의 업무가 이관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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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명2016한일관계사연구본고는 식민지 조선에서 지방행정의 의결기관이었던 도회의 구성과 활동을 중심으로 조선인의 지방정치참여의 실태를 파악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구체적으로는 경기도회를 사례로 선거 과정과 구성, 그리고 1936년과 1937년도 경기도회 회의록을 통해 회의의 실제를 분석하였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우선, 경기도회의 선거는 관선에 일본인을 다수 임명함으로써 민선의원을 포함한 도회 세력 분포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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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명2015한일관계사연구일본제국주의가 식민지 조선에서 실시한 지방정치참여제도인 부(협의) 회?도(평의)회는 주로 조선의 정치상황에 따라 1910년대 관선 자문기관, 1920년대 관?민선 자문기관, 1930년대 관?민선 의결기관, 1943년 이후 추천선 의결기관 등으로 바뀌었다. 그 변화의 방향은 대체로 의결기관으로의 전환, 정원의 확대, 임기의 연장, 선거의 확대 실시 등 식민지 조선과 일본 본국, 조선 내에서의 조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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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명2014한일관계사연구이 글의 목적은 1934년 부산부회에서 일어난 조선인 의원 총사직 사건을 중심으로 식민지 조선에서 전개된 지방정치의 실제를 분석함으로써 당시 일본제국주의와 조선인 정치세력이 각각 안고 있던 문제점을 규명하는데 있다. 부산부회 예산안 심의 중 조선인 의원들이 당시 조선인이 다수 거주하는 지역의 교통편의시설의 부족과 위생시설의 미비, 수원지에서의 번견사용 등 조선인에게 차별적으로 행해지던 정책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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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명2013한일관계사연구1928년 전라남도 도평의회에서 일어난 조선인 도평의회의원(이하 도평의원)과 일본인 도평의원 사이의 ?알력?사건은 일본인 도평의원 야마노로조(山野瀧三)의 회의장 밖에서의 발언 내용에 대해 조선인 도평의원들이 조선인을 무시했다며 사과를 요구하고 심의를 거부하면서 시작되었다. 도지사의 중재로 야마노가 조선인 도평의원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사죄함으로써 사건은 일단락되는 듯하였다. 그러나 일본인 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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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명2012한일관계사연구이 글은 1929년 경성부에서 일어난 「신당리토지문제」를 중심으로 일본 제국주의 지배하 식민지 조선에서 전개된 부협의회의 정치과정을 분석함으로써 당시 일본제국주의가 안고 있던 난점과 식민지 조선의 지방 정치의 실제를 규명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1929년 경성부에서 일어난 「신당리토지문제」는 경성부 당국이 자문기관인 부협의회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정책을 실행하려 한 데 대해 부협의원의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