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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숭인의 졸기에 어느 왜인이 영흥군을 일컬었다고 적다.
손흥종(孫興宗)·황거정(黃居正)·김노(金輅) 등은 조정에 돌아왔으나, 경상도에 귀양간 이종학(李種學)·최을의(崔乙義)와 전라도에 귀양간 우홍수(禹洪壽)· 이숭인(李崇仁)·김진양(金震陽)·우홍명(禹洪命)과 양광도(楊廣道)에 귀양간 이확(李擴)과 강원도에 귀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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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준이 관직을 사양하면서 유구와 남만의 입공을 아뢰다.
좌시중 조준(趙浚)이 평양 식읍(食邑)과 경기도통사(京畿都統使)를 사면(辭免)하기를 청하였다. 그 전문은 이러하였다.
“신이 듣자옵건대, 은총과 이록(利祿)으로써 성공한 후에 그대로 있지 아니한 것이, 이윤(伊尹)이 자기 몸을 소중히 여기고 그 임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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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도절제사 이화 등을 각도에 보내 왜구를 방비케 하다.
삼도절제사(三道節制使) 의안백(義安伯) 이화(李和)·전 문하평리(門下評理) 박위(朴葳)와 최운해(崔雲海)를 양광도(楊廣道)에 보내고, 흥안군(興安君) 이제(李濟)·판중추원사(判中樞院事) 남은(南誾)·참찬문하부사(參贊門下府事) 이지란(李之蘭)을 경상도에 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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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도에서 군사를 점고하여 군적을 올리다.
각도에서 군적을 올렸다. 이보다 먼저 남은(南誾)·박위(朴葳) 진을서(陳乙瑞) 등 8명의 절제사(節制使)를 보내어 왜구를 방비하게 하였는데, 왜구가 물러가매, 남은은 경상도에서, 박위는 양광도에서, 진을서는 전라도에서 군사를 점고하여 명부를 만들게 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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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왜 구육 ․ 비구시지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남은(南誾)은 겸판상서사사(兼判尙瑞司事)를, 심효생(沈孝生)은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를, 민여익(閔汝翼)은 대사헌(大司憲)을, 정담(鄭澹)은 도승지(都承旨)를, 정탁(鄭擢)은 좌승지(左承旨)를, 항복한 왜인 구륙은 선략장군용양순위사행사직 겸 해도관군민만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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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헌 민여익이 조견등을 왜를 막지 못한 것을 이유로 탄핵하다.
대사헌 민여익(閔汝翼)이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 조견(趙狷)과 한성윤(漢城尹) 신효창(申孝昌)을 탄핵하였다. 조견은 합포(合浦)의 절제(節制)로 있었을 때, 왜구(倭寇)를 제어하지 못하였는데, 신효창은 당시 대사헌으로 있으면서 조견을 탄핵하지 못하였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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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운해 ․ 이귀철 등을 항왜가 도망간 일로 국문하다.
최운해(崔雲海)·이귀철(李龜鐵)·김빈길(金贇吉)·김영렬(金英烈) 등을 잡아와 순군옥(巡軍獄)에 가두고, 대간(臺諫)과 형조로 하여금 이를 국문(鞫問)하게 하였다. 옥사(獄事)가 이루어지니, 우정승 김사형(金士衡)과 의성군(宜城君) 남은(南誾)이 그 죄를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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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 ․ 남은 ․ 박위 ․ 유만수의 졸기에 왜에 관해 적다.
정도전의 자(字)는 종지(宗之), 호(號)는 삼봉(三峰)이며, 본관(本貫)은 안동봉화(安東奉化)이니, 형부상서(刑部尙書) 정운경(鄭云敬)의 아들이다. ……
임금을 따라 동북면에 이르렀는데, 도전이 호령이 엄숙하고 군대가 정제(整齊)된 것을 보고 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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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자가 왜적을 막지 못한 박자안과 그의 아들 박실의 효를 논하다.
세자가 빈객(賓客) 정탁(鄭擢)과 더불어 충효의 도리를 강론하였다.
……
세자가 말하였다.
“사람의 죽고 사는 것은 명에 있고,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축년에 박자안(朴子安)이 왜적을 막지 못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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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 신우(辛禑) 때에 사직단직(社稷壇直)으로 배치되었었다. 그때 왜구의 기세가 치열하였고 삼척군(三陟郡)은 성이 작고 견고치 못하여 국가에서 수비하기 곤란하였는데 남은(南誾)은 자원하여 그 고을 원으로 갔었다. 부임한 후 적이 갑자기 왔으므로 남은은 기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