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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승지 유근이 동궁이 있는 성천에 다녀와 아뢰다.
도승지 유근(柳根)이 아뢰었다.
“신이 이달 3일 성천(成川)의 온정(溫井)에 도착하였고 4일 이른 아침에 나아가서 예조의 의주(儀註)대로 예식을 거행하였습니다. 예를 끝마치고 동궁이 다례를 거행하려는데 신이 분예조(分禮曹)가 의논하여 정한 의주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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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정 최흥원이 동궁을 모시고 있으면서 명군과 합동 작전을 편 내용을 치계하다.
영의정 최흥원(崔興源), 좌찬성 정탁(鄭琢)이 치계하였다.
“신들이 동궁을 모시고 10일부터 영변부(寧邊府)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평양의 적은 소굴까지 정벌하여 거의 섬멸하게 되었으므로 여러 적들이 그것을 듣고서 반드시 기가 꺾일 것이며, 국가 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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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변사가 명군을 따라간 군대의 행방을 모르겠다며 도원수 김명원 등의 추고를 청하다.
비변사가 아뢰었다.
“신들이 삼가 중국 조정이 이번에 보낸 자문을 보니 매번 우리나라의 잔약한 군사 수만 명으로 군량을 운반하라는 것이었고 심지어는 ‘현재 어느 곳에 곡식을 운반했는가?’하기까지 하여 그 정녕한 부탁이 여러 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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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 순찰사 홍세공이 고원에 모인 왜적을 파수하고 있다고 치계하다.
함경도순찰사 홍세공(洪世恭)이 치계하였다.
“영흥판관(永興判官) 이여량(李汝良)이 치보하기를, ‘이 달 초이튿날 부에 머물고 있던 왜적이 모두 나가 고원(高原)으로 돌아갔는데 관사와 토굴이 분탕되지 않았으므로 방어사·의병장·별장·판관 등이 군마를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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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의정 윤두수를 인견하고 개성의 군량, 경성 수복방법 등을 논의하다.
좌의정 윤두수(尹斗壽)가 평양으로부터 돌아오니 상이 인견하였다. 참찬관 심우승(沈友勝), 가주서 김흥국(金興國), 기사관 조유한(趙維韓)·신영(申泳)이 입시하였다. 윤두수가 아뢰기를,
“신이 평양에 들어가니 이여백(李如栢)이 마침 제독과 이야기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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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변사가 부산의 왜적을 막기 위해 창원부사 장의국을 교체하라고 청하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흉적이 부산에 모여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왜적이 새로운 병사로 교체되었다고 하는데 중국군이 철수하여 거의 재[嶺]를 다 넘고 있어서 적에 대한 방비책은 믿을 만한 것이 없습니다. 그리하여 파견시켰던 장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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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병사 권응수가 대구부의 적이 물러갔고 청도의 적은 추격 중이라고 치계하다.
경상좌도병사 권응수(權應銖)가 치계 하였다.
“대구부에 남아 있던 적은 5월 15일에 한 명도 남김없이 모두 물러갔고, 그 날 중국군의 선봉 이 총병이 군사를 거느리고 대구부로 들어갔으며, 청도의 적은 5월 16일에 도망하였는데 평안좌방어사 박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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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군사에서 왕세자 호위를 박명현에게 맡겼다고 보고하다.
무군사(撫軍司)가【좌찬성 정탁(鄭琢), 분호조판서(分戶曹判書) 한혼(韓渾), 분병조판서 이항복(李恒福), 한성부좌윤 김우옹(金宇顒)임】치계하였다.
“동궁이 남쪽으로 내려갈 적에 동지 박진(朴晉)을 호위대장으로 삼았는데, 지금 거사할 때에 대신의 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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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변사에서 전라도 장수의 지휘체계를 세울 것을 청하자 따르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경상좌우도의 제장을 보면 좌도에 고언백(高彦伯)·김응서(金應瑞)·이사명(李思命)·권응수(權應銖)등이 있고, 우도에 이빈(李薲)·박진(朴晉)·이시언(李時言) 등이 있으니 장수는 부족하지 않습니다. 단지 한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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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이천 ․ 죽산 등지의 토적 토벌 방안을 논의하다.
전교하기를,
“경기 이천 · 죽산 등지에 토적이 크게 일어나서 조금도 두려워함이 없고 심지어는 수령까지 잡아다가 모욕한다니, 이것은 보통 좀도둑에 비할 바가 아니며 그 사이에 또한 매우 놀라운 말들이 많았다. 지난번에 비변사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