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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곡탈취 등 적에 의한 식량 약탈이 심해지자 그 대책을 세우게 하다.
비망기로 정원에 전교하기를,
“양향(粮餉)의 조치도 조치이지만 흉적은 극히 교사하다. 군량을 비축할 뜻을 염탐하여 알아내 경병(輕兵)으로 기습하여 곡식 더미를 불지른다면 큰 일을 이룰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 조치하는 의도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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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경리가 중국과 조선군과의 합동 작전계획을 세워 아뢰다.
경리의 접반사가 아뢰었다.
“경리가 분부하기를 ‘수병을 만약 전라우수영 근처에 진주시킨다면 경주(慶州) 및 왕경과의 거리가 멀고 한산도(閑山島)에 진주시킨다 해도 역시 멀기 때문에 내가 앞으로 파발을 두어서 급속히 통래시키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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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에 중국군 군량미 보전대책을 세우도록 지시하다.
비망기로 정원에 전교하였다.
“적추가 안동(安東)에 중국군이 군량을 비축하여 둔 것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군사를 풀어 약탈하려고 한다 하니, 그 말의 허실은 알 수가 없으나, 우리가 대비하는데 있어서는 최선을 다하지 않는 바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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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변사가 호남 방어의 필요성, 왕의 남하 저지, 파발마의 불통 등을 아뢰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현재 호남의 방어는 일각이 급한데 중국군 3천 명의 파견으로는 초탐하는데나 겨우 가능할까 둔(屯)을 나누어 적로를 차단하고 기회를 보아 진격하는 데 있어서는 형세상 해 낼 수 없습니다. 그러니 적의 음모를 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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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감정 윤방이 군량 수급 실태 및 대책을 자세히 논하다.
군자감정(軍資監正) 윤방(尹昉)이 아뢰기를,
“신이 지난달 27일 대군이 남하한다고 하여 5일 앞당겨 떠나왔습니다. 대개 남쪽 지방은 풍속이 소박한데다가 성품도 인색한데 안동(安東)이 더욱 심합니다. 소금·장·술·나물 등 물건까지도 매매하지 않는가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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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반사 송순이 부총 해생의 도망사실을 아뢰다.
해부총(解副摠)의【해생(解生).】접반사 호조참의 송순(宋諄)이 아뢰었다.
“울산의 왜적들이 포위당한 지 오래 되었는데 구원선이 많이 와서 정박하였고, 또 왜적의 소굴에서 서쪽으로 뻐친 먼 산 위에 기치를 성대하게 세워 놓고서 성세를 돕고 있습니다. 정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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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언 ․ 성윤문이 적과의 전투 상황과 후퇴 사실을 알리다.
충청도절도사 이시언(李時言)과 경상좌도 절도사 성윤문(成允文)이 치계하기를,
“신들이 지난달 23일 중국군을 따라 울산의 적 소굴에서 싸운 형세와 27일 두 번째 싸운 내용은 이미 도원수 권율(權慄)에게 치보하였습니다. 이 달 2일 서생포(西生浦) 등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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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반사 이덕열이 후퇴 중 입은 피해와 백성들의 비참한 실상을 보고하다.
부총 이여매(李如梅)의 접반사 이덕열(李德悅)이 치계하기를,
“이 달 4일 각 진영이 회군한 일은 이미 치계하였습니다. 그 날 제군이 철수할 때 수륙의 왜적들이 군사를 모아 30리 밖까지 추격하여 왔습니다. 중국군의 전사자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은데 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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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격 진인을 만나 적과의 전투 상황 및 이길 계책을 논의하다.
상이 진유격(陳遊擊)의【진인(陳寅).】관사에 행행하여 접견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소방 때문에 풍설이 몰아치는 먼길을 와 직접 시석을 무릅쓰고 싸우다가 중상을 입었으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소이다.”
하니, 유격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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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룡이 안동에서 민심동요 상황을 알리고, 군대 재편성을 요청하다.
겸사도도체찰사 의정부 영의정 유성룡(柳成龍)이 안동(安東)에 있으면서 장계를 올리기를,
“중국군이 물러난 뒤 도내의 사람들이 다시는 어떻게 해 볼 수 없다고 여겨, 길에서 양식을 운반하던 사람들이 혹 눈물을 흘리면서 ‘우리들이 있는 힘을 다해 양식과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