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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근수가 중국 군대의 출동 상황을 치계하다.
해평부원군 윤근수(尹根壽)가 치계하였다.
“어제 심희수(沈喜壽)가 구원병을 요청할 일로 탕참으로 달리어 갔다가 오늘 사시에 돌아왔습니다. 듣자니 대조변(戴朝弁) · 사유(史儒) 두 장수가 군마를 거느리고 15일에 강을 건넌다고 하기에, 신은 강가에 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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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조판서 윤근수 등이 중국 군대가 또 강을 건넜다고 보고하다.
예조판서 윤근수(尹根壽), 참판 유근(柳根), 홍문관 부응교 심희수(沈喜壽) 등이 치계 하였다.
“참장 곽몽징(郭夢徵)과 유격 왕수관(王守官)이 어젯밤에 또 500군마를 거느리고 강을 건너왔습니다. 오늘 아침에 신근수가 속히 달려가 구원하여 달라고 요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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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부승지 이곽이 중국 군대가 군량이 마련되는대로 기동한다고 보고하다.
우부승지 이곽(李⿰石國)이 치계 하였다.
“신이 16일에 명을 받들고 나와 18일에야 비로소 의주에 도착하였습니다. 참장 곽몽징과 왕수관이 병사를 거느리고 이미 도착하였기에, 신이 역관을 시켜 말하기를 ‘이달 13일에 우리 군사가 밤을 이용하여 왜적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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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도사 홍세공이 뒤에 온 중국 군대의 기율이 엄하지 않다고 보고하다.
조도사(調度使)조도사(調度使)난리가 났을 때 지방에 파견되어 군량과 물품을 징발하여 수송하는 일을 맡은 임시 벼슬. 또는 그 벼슬아치. 홍세공(洪世恭)이 치계 하였다.
“광녕유격(廣寧遊擊) 왕수관(王守官)과 원임참장(原任參將) 곽몽징 등은 병사 506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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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전투 후에 양 총병이 왜적에 대한 정보 부족을 질책했다고 심희수가 보고하다.
이에 앞서 부총병 조승훈(祖承訓), 유격장군 사유(史儒)·왕수관(王守官) 등이 평양에 진격하여 17일 동틀 녘에 평양으로 돌격, 성에 포를 쏘고 관을 부수면서 길을 나누어 쳐들어가 몸을 돌보지 않고 전투를 독려하였다. 사유가 사졸보다 앞장서서 천총(千摠) 마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