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종 22년(1168) 무자년
22년 봄 정월
초하루 갑자일. 왕이 관북궁(館北宮)에서 신년하례를 받고 시를 지어 유신(儒臣)들에게 보였다.
정축일. 연등회(燃燈會) 참석차 왕이 봉은사(奉恩寺)에 행차했다.
무인일. 밤을 새워 신하들과 잔치를 벌이고는 이튿날 한 …
-
의종 22년(1168) 무자년
二十二年 春正月 甲子朔 王御館北宮受賀, 賦詩示儒臣. 丁丑 燃燈, 王如奉恩寺. 戊寅 宴群臣徹夜, 至翌日日中乃罷. 庚辰 移御興王寺. 甲申 移御㹨串江書齋. 丙戌 還宮. 己丑 以江陽伯瑊之女爲太子妃. 癸巳 王以夢中所製詩, 示群臣. 其末聯云, “布政仁恩洽, 三韓致大平.”…
-
濟危寶
부인이 죄 때문에 제위보 제위보 광종 14년(963)에 설치된 서민들을 구료(救療)하는 기관으로 제위포(濟危鋪)라고도 하였는데, 공양왕 3년(1391)에 폐지되었다.에서 도역(徒役) 도역 도형(徒刑)에 처해져서 노역하는 것을 말한다.을 하다가, 그 손을 남에게…
-
東西大悲院
문종 때 관제를 정하여 사(使) 각 1명, 부사 각 1명, 녹사 각 1명을 병과권무로써 임명하였다. 이속 가운데 기사(記事) 2명은 의리(醫吏)를 보내 임명하고, 서자(書者) 2명을 두었다. 충숙왕 12년에 왕이, “혜민국(惠民局)과 제위보(濟危寶)와 동․서대…
-
濟危寶
광종(光宗) 14년에 처음 설치했다. 문종 때 관제를 정하여 부사(副使)는 1명에 7품 이상으로, 녹사는 1명에 병과권무로써 임명하였다. 공양왕 3년에 없앴다.
-
水旱疫癘賑貸之制
현종 3년(1012) 5월. 왕이 다음과 같이 하교했다.
“작년 서경에 홍수와 가뭄의 피해가 겹치는 바람에 가격이 폭등해 민들이 곤란을 겪고 있다고 하니 짐은 자나 깨나 걱정을 하고 있다. 담당 관청으로 하여금 창고를 열어 진휼하게 하라.”
…
-
濟危寶
婦人以罪, 徒役濟危寶, 恨其手爲人所執, 無以雪之, 作是歌以自怨. 李齊賢作詩解之曰, “浣沙溪上傍垂楊. 執手論心白馬郞. 縱有連簷三月雨, 指頭何忍洗餘香.”
-
東西大悲院
東西大悲院【文宗定, 使各一人, 副使各一人, 錄事各一人, 丙科權務. 吏屬, 記事二人, 以醫吏差之, 書者二人. 忠肅王十二年, 敎曰, “惠民局․濟危寶․東西大悲院, 本爲濟人, 今皆廢圮, 宜復修營, 醫治疾病.】
-
濟危寶
濟危寶【光宗十四年, 始置. 文宗定, 副使一人, 七品以上, 錄事一人, 丙科權務. 恭讓王三年, 罷.】
-
水旱疫癘賑貸之制
水旱疫癘賑貸之制
顯宗三年五月 敎曰, “去年, 西京水旱爲災, 穀價騰踊, 民用困乏, 朕夙興夜寐, 念之惻然, 其令所司, 發倉賑之.”
七年九月 三司奏, “江南饑饉, 請轉關內倉穀, 賑之.” 從之.
八年七月 賑京城貧民.
九年正月 以興化鎭比因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