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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승범2020韓國史學史學報Korean historians regard Koryŏ(918-1392) as an aristocratic society because the ruling elites of Koryŏ can be characterized as aristocrats. 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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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오2017합천 지역의 양반이었던 河渾이 1606년 편찬하고 1608년에 교정한 『晉陽河氏世譜 - 萬曆本』(이하 『진양하씨세보』)를 바탕으로 하여 17세기 향촌사회에서 양반의 혼인관계를 살펴보았다. 혼인관계에서 더 나아가 지방의 양반이 중앙과의 관계에 있어서 어떠한 모습을 보이고자 했는지 살펴보고자 했다. 이미 기존 연구에서 족보에 대한 역사적 변화에 대한 검토가 이루어져 왔다. 더불어 내외손을 모두 중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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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령2016민족문학사연구이 글은 식민지 근대문학에서 뚜렷하게 관철되는 양반의 과소재현의 문제를 다루고자 하였다. 신분제는 갑오개혁에 의해 제도적으로 해체되었다고 하나 1920~1930년대 신문 사회면 기사는 통칭 “상놈”이라 일컬어진 인민들에 대한 향촌 양반의 인격적 지배가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야학과 같은 근대적 교육기관의 설립을 반상의 질서를 무너뜨린다는 이유로 저지하였으며, 언행에 있어 평등을 지향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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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택구2016언어와 정보 사회There are three Marks of non-character Information in Chinese Letters of Choseon Dynasty: 1) mark of correction, 2) mark of respect, 3) mark o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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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석2015朝鮮時代史學報『이향견문록』은 19세기 규장각 서리 劉在建이 주로 ``위항인``으로 통칭되는 중하위 계층 인물들이 보인 모범적인 일화를 모아놓은 책이다. 본서에는 18~19세기 위항문화를 꽃피운 많은 중인층 지식인들이 수록되어 있으며, 이들은 주로 서울에 거주하는 경아전과 전문직 중인 관료들로서 본서의 수록인물들 중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핵심계층이었다. 하지만 그밖에도 상민과 천민에 해당하는 인물들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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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신2012인문과학연구Life of Yangban, or Sadaebu, gentry in Joseon dynasty (1392-1910) can be divided into two parts of public and private. This article explores 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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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계영2011古文書硏究詩箋紙란 조선시대 이전부터 문인을 포함한 상류층 인물들이 주변 지인들과 편지ㆍ詩를 주고받는 때 사용하였던 문양이 있는 종이인데, 이 글에서는 ‘시전지’라는 실물을 통해 조선시대 사람들, 특히 시전지를 사용하였던 문인들의 감성 표현, 시전문화의 변화와 그 변화로 인한 양반층에서의 시전지 사용의 확산 현상에 주목하였다. 조선시대에는 개인 또는 집안에서 갖고 있던 시전판을 종이에 찍어 시전지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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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다함2008그간 근대지향적 시각 속에서 서구의 근대과학과 비슷한 성격의 것으로 평가되면서 ‘近代’에 가까워진 새로운 시대의 발전을 상징하는 의미를 부여받아 ‘技術學’이라 불려온 譯學, 天文⋅曆算, 風水地理, 醫學 등을 중심으로 한 조선전기의 雜學은, 그간 파악되어 온 것과는 다르게, 동아시아 전통적 왕조체제 속에서 王權을 확립하고 유지하는 데에 반드시 필요한 政治的이고 儀禮的인 성격이 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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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철2007담론 201본 연구는 조선 후기 사회변화 속에서 재지사족의 향촌지배 실상과 대응 양상을 순천의 사례로 살펴본 것이다. 지방의 전통적 양반인 재지사족의 지위는 대략 17~18세기에 전성기를 이룬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족지배체제가 동요하고 해체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이후부터라고 알려져 왔다. 하지만 이와 반대되는 견해도 적지 않아 아직 어떤 견해가 옳다고 단언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보다 구체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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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구의2003退溪學과 韓國文化본고는 16세기에서 17세기에 걸쳐 경상도 안동에서 순수 처사로 살다간 갈봉 김득연(1555-1637)의 다양한 작품 가운데, 제목이 「元朝」라는 말이 들어간 시를 연구 대상으로 하였다. 역사적으로 보면, 중국에서는 당나라 때 한 수가 있고 그 뒤로는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말부터 이러한 제목의 시가 등장하기 시작하여 조선 중기에서 후기에 이르는 동안 많은 수의 작품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