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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종2015한일관계사연구조선에서는 건국 직후부터 해양의 방어 및 외교적인 교섭, 왜구 회유책 등 다양한 왜구대책을 실시하였다. 그 결과 조선에 투항하는 向化倭人은 급증하였고 왜구의 침입은 감소하였다. 皮尙宜의 아버지 皮沙古는 태조대에 向化하여 受職倭人이 되었다. 피상의는 태종 말에 侍衛하기 시작하였다. 조선에서는 향화왜인에게 정치?경제?사회적인 우대책을 실시하였는데, 피상의는 향화왜인 우대책에 의해서 과거가 아닌 取才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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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종2012한일관계사연구대마도정벌 이후 왜인들이 도항할 수 있는 항구를 三浦로 제한하였으며, 고기잡이할 수 있는 지역도 부산포와 내이포 근처로 제한하였다. 대마도에서는 조선 측에 포소의 추가 개항을 요구하였으나 거절당하자, 경상도 연해어장의 확대와 전라도 남해 연안의 어장 특히 고초도에서의 고기잡이를 요구하였다. 조선에서는 논란 끝에 고초도에서의 고기잡이를 허용하였다. 조선에서는 고초도조어금약으로 왜인들이 고기잡이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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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종2011한일관계사연구조선초기 다양한 왜구대책의 실시로 남방지역에 대한 경계인식이 나타나기 시작하였으며, 왜인통제책의 하나인 포소의 제한으로 남방지역에 대한 경계인식이 형성되어 갔다. 그러나 고려말 조선초에 실시된 해금정책과 일부 섬에 대한 "공도화"는 이러한 인식의 발달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었다. 그러나 서남해안의 섬에 주민들이 몰래 들어가 거주하면서 조선에서는 남쪽 해양에 대한 경계인식이 점차 확산되어 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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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한일관계사연구〈P〉 조선초기 다양한 왜구대책의 실시로 남방지역에 대한 경계인식이 나타나기 시작하였으며, 왜인통제책의 하나인 포소의 제한으로 남방지역에 대한 경계인식이 형성되어 갔다. 그러나 고려말 조선초에 실시된 해금정책과 일부 섬에 대한 "공도화"는 이러한 인식의 발달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었다. 그러나 서남해안의 섬에 주민들이 몰래 들어가 거주하면서 조선에서는 남쪽 해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