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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항녕2012泰東古典硏究본고에서는 18세기 조선에 살았던 존재 위백규(存齋 魏伯珪, 1727~1798)의 격물치지(格物致知)에 대한 견해와 그 의미를 살펴보았다. 위백규는 자신의 문집인 『존재집(存齋集)』의 4권(12권~15권)에 걸쳐 「격물설(格物說)」이라는 논설을 남겼다. 이 논설에서는 천지(天地)부터 인간의 삶 일반, 주체인 나[我], 각종 동물과 식물에 이르기까지 탐구하면서 다양한 대상과 주제에 대한 평론과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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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항녕2011泰東古典硏究본고에서는 장흥의 선비 존재 위백규의 <기해의례변>과 <춘추대의변>을 중심으로 기해예송과 송시열의 춘추대의를 둘러싼 논의를 위백규가 그 사실을 어떻게 이해했고 기억했는지 살펴보았다. 위백규는 병계(屛溪) 윤봉구(尹鳳九 1681년~1767년)의 제자였다. 윤봉구는 송시열의 제자인...춘추대의변>기해의례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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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강영2009위백규는 농촌 생활의 풍경을 9수의 연시조로 읊은 「農歌九章」과 사회의 부조리한 제도의 개선이나 사회 전반의 문제에 대한 고민을 다루고 있는 「萬言封事」, 「政絃新譜」가 가장 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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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연1992한국 역사상의 17, 18세기는 흔히 실학의 시대로 불리워지는데, 이 시기의 수 많은 지식인들은 당시 사회의 모순을 개혁하고자 각양의 주장과 방책을 제시하였으며 그러한 주장들의 밑바탕에는 민생 옹호라는 지식인으로서의 자책적 양심과 사회 개선의 강한 비판 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