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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덕대후 2
왜적들이 강화를 침범하여 함부로 주민들을 살상 포로하여 갔다. 태후가 양백안(楊伯顔)을 도당(都堂)에 보내서 말하기를,
“왜적이 포학하게 백성들을 도살한다니 수수방관할 수 없다. 지금 왜승(倭僧) 양유(良柔) 등이 사신으로 와 있다는데 그 자를 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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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흥유
신우(辛禑) 초기에 판전객시사(判典客寺事)로 되어 왕에게 상서해 일본에 가서 강화를 맺을 것을 자청하므로 마침내 그를 통신사로 보냈다. 신사년에 일본을 정벌한 후로부터 일본은 우리나라와 절교하였으므로 나흥유가 가자 처음에는 간첩으로 의심하고 그를 구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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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흥유가 일본에서 파견한 승 양유와 함께 돌아와서 예물을 바치다.
나흥유(羅興儒)가 일본으로부터 돌아왔다. 동시에 일본에서는 중 양유(良柔)를 파견하여 답례하였으며 비단·꽃병풍·장검·금용두(龍頭)를 장식한 술잔 등을 예물로 바쳤다. 그리고 그 나라의 중 주좌(周佐)는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내 왔다.
“지금 우리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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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흥유가 일본 승 주좌의 글을 가지고 일본에서 돌아오다.
나흥유(羅興儒)가 일본에서 돌아왔다. 일본이 중 양유(良柔)를 보내어 답례하고, 이어서 채단·화병·장검 등의 물건을 바쳤다. 신사년 동정한 이후로, 국교를 끊은 지가 백 년이나 되었다. 이때에 이르러 일본이 흥유를 간첩이라 하여 가두었다. 양유는 본래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