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洪性和2017일본연구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re-examine Korea-Japan relations in the an-cient through the Kibi clan of the articles related to the Korean Pe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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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민수2016한일관계사연구고대일본의 신라적시관과 복속사상은 표리일체를 이루는 지배층의 정치적 이념이었다. 신라적시관의 생성은 왜왕권과 친연관계에 있던 백제의 멸망이었다. 천황제 율령국가의 기틀을 마련한 일본국이 추구한 대외적 이념으로서 신라를 능가하는 國制의 편성이었다. 이를 위해 대보율령을 제정하였으며 신라를 번국으로 하는 법적 조문을 명기하고, 복속사관을 역사적으로 증명하기 위해 신공황후의 신라정벌담을 창출하였다. 고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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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진2013한일관계사연구『日本書紀』에 보이는 百濟의 ‘君’號는 키시(キシ)와 키미(キミ)2가지의 훈독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훈독의 차이는 백제의 ‘君’號가 가지고 있는 성격과도 연관이 있다. 키시(キシ)로 훈독되는 ‘君’號는 일정한 세력을 형성하였던 인물들에게 주어진 칭호였다. 초기에는 왕이나 왕족의 인물들에게서만 ‘君’號가 보였으나 점차 귀족이나 가야, 왜의 인물에게서도 백제의 ‘君’號가 사용되었다. 무령왕대에 이르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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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孝雲2012일어일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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洪性和2010한일관계사연구本考는 『日本書紀』에 기록되어 있는 倭의 한반도 파병의 기사와 百濟에서 일본열도로 건너간 인적 교류의 기사를 비교?분석함으로써 4~6세기에 이르는 百濟와 倭의 관계를 재조명해보고자 하였다. 우선 6세기 중엽 가야 패망 전까지 『日本書紀』내에 기록되어 있는 倭의 한반도 군사 파견기록을 분석하면, 모두 倭가 주체가 되어 활동한 것이 아니라 百濟가 주체가 되어 수행한 전쟁에 지원군의 형태로 왔던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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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용2009한일관계사연구이른바 ‘百濟三書’의 하나인 『百濟記』는 百濟王氏인 善光과 망명백제인이 7세기 후반 일본에서 近肯古王~文周王대까지 百濟의 역사를 정리한 사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善光 등은 당시 일본의 고대 율령제 국가에서 정치?사회적 지위를 보전하는 방법으로써 백제가 근초고왕 이래 天皇家에 봉사하였다는 역사를 기록하는 방법을 택하였다. 이를 위해 百濟의 왕위 계승을 천황의 의사가 반영된 것으로 기술하는 등 百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