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 운곡(雲谷) 이희발(李羲發, 1768~1850)의 문집이다. 손자 유재(維在)에 의해 수집 편차되어 유치명(柳致明)의 행장과 이명적(柳致明)의 묘지명과 홍우순(洪祐順)의 신도비명을 받았으나, 서문과 발문이 없어 명확한 편찬 내력은 알 수 없고, 다만 권수에 수록된 연보의 말미에 보이는 기사를 고려하면 1899…
조선 시대 중암(重菴) 강이천(姜彝天, 1769~1801)의 문집이다. 저자의 아들 기백(耆伯)이 원래는 8권으로 편성할 생각이었던 듯하지만 권별로 수록 문체만 제시하고 권차를 따로 규정하지 않은 점과 본문의 편집 상태를 고려하면 아직 정리 중이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본집은 불분권 4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문체별 …
조선 시대 여류시인 정일당(靜一堂) 강지덕(姜至德, 1772~1832)의 문집이다. 저자의 남편 윤광연(尹光演)이 유문을 수습 정리하고 1834년과 1835년에 각각 윤제홍(尹濟弘)의 서문과 윤수경(尹守慶)의 발문을 받고 1836년에 스승 송치규(宋穉圭)의 서후(書後)를 받아 목판으로 간행하였는데 애초에 활자로 인쇄한 …
조선 시대 난국재(蘭菊齋) 이예환(李禮煥, 1772~1837)의 문집이다. 저자 사후 아들 기표(基鑣)는 하백원(河百源)을 찾아가 정정(訂正)을 부탁하여 유고를 4권으로 산정하고 발문을 받았으며, 김면근(金勉根)에게 고정(攷訂)과 함께 후서(後序)를 받았다. 저자의 손자 규현(奎鉉)이 홍직필(洪直弼)로부터 서문을 받았는…
조선 시대 문산(文山) 이재의(李載毅, 1772~1839)의 문집이다. 저자의 유문은 계자 건식(建栻)이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집 편차하여 영천 군수(永川郡守)로 재직 중이던 1870년 9월에 김상현(金尙絃)에게 서문(序文)을 받아 활자(活字)로 인행하였다. 본집은 11권 4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卷首)에 …
조선 시대 호고와(好古窩) 유휘문(柳徽文, 1773~1832)의 문집이다. 아들 치교(致喬)가 유고를 수습하여 등사에 착수하여 판독이 어려운 초본은 문세와 의리에 따라 추정하여 정리하고 저자의 문인 신필흠(申弼欽), 족자 치호(致皜) 등도 상수(象數), 율려(律呂) 등을 교정하였으며, 이후 종증손 필영(必永)이 문중의 …
조선 시대 관암(冠巖) 홍경모(洪敬謨, 1774~1851)의 문집이다. 《관암전서》는 시문 중 상당수를 가려 뽑은 것으로, 저자가 자신의 시문을 종합하려는 의도에서 자편한 것으로 보인다. 《관암전서》의 체재는 저자가 개편한 《총사》와도 상이하고, 저자의 저술 내에는 편찬에 대한 언급도 보이지 않는 것으로 미루어 저자 7…
조선 시대 송서(松西) 강운(姜橒, 1773~1834)의 문집이다. 저자의 유문은 생전인 1834년에 실화로 8할 정도가 사라진 것을, 손자 한규ㆍ하규(夏奎)와 종손 명규(命奎) 등이 수습하고 1849년에 1차 정리하여 가장(家狀)하였다. 이후 저자의 증손 용(鎔)이 정리 재편한 것을 5대손인 강수원(姜壽元)이 영주에서…
조선 시대 초암(初庵) 김헌기(金憲基, 1774~1842)의 문집이다. 저자 사후에 사위 백응진(白膺鎭), 문인 김제오(金濟五), 백일현(白一顯) 등이 유고(遺稿)를 모아 《남산속고(男山續稿)》를 만들고, 구고(舊稿)의 편차(編次)를 따르면서 속고(續稿)와 합편(合編)하여 《초암집(初庵集)》을 만들어 가장(家狀)하였다.…
조선 시대 소암(所菴) 이병원(李秉遠, 1774~1840)의 문집이다. 저자의 유집(遺集)은 사손 문직(文稷)이 1870년에 편집(編輯)하고 저자의 편서인 《결송장보(決訟場補)》와 함께 정본(定本) 수십 권을 손수 선사(繕寫)해 두었다고 한다. 이후에 1904년 증손 찬도(贊燾) 등이 다시 편찬(編纂) 사업을 추진(推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