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 만성(晩醒) 박치복(朴致馥, 1824~1894)의 문집이다. 저자의 아들 희선(煕善)이 난고(讕稿) 및 유문을 정리하였으나 격심한 사회적 혼란 속에 단질(單帙)의 초본이 망실될 것을 염려하여 약간 권의 고본(稿本)을 후산(后山) 허유(許愈)와 교감하여 1896년 단성(丹城) 이택당(麗澤堂)에서 목활자로 13권…
조선 시대 혼재(渾齋) 안교익(安敎翼, 1824~1896)의 문집이다. 저자의 유적과 유문은 사후 사자(嗣子) 정호(鼎鎬)와 문인들에 의해 수습 정리되어 임석영(林奭榮)에게 행장을 받고, 전우(田愚)에게 묘갈명을, 송병준(宋炳俊)에게 행장에 대한 발(跋)을 받고, 임석영에게 편차(編次)를 부탁하는 동시에 문집의 서문까지…
조선 시대 월고(月皐) 조성가(趙性家, 1824~1904)의 문집이다. 손자 용숙(鏞肅), 조카 찬규(纘奎), 증손 만제(萬濟) 등이 저자 문인들과 함께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습 정리한 뒤 1929년에 하동(河東)의 서강정사(西岡精舍)에서 활자로 문집을 인행한 것이다. 본집은 20권 10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卷首…
조선 시대 소송(小松) 이지용(李志容, 1825~1891)의 문집이다. 초간은 저자 사후에 아들 교문(敎文)이 상중(喪中)임에도 가장되어 있던 유문을 수습 정리하여 기우만(奇宇萬)과 상의하여 간행하기로 한 뒤 시문을 7권으로 편차하고, 교문이 지은 가장(家狀)을 바탕으로 기우만의 행장을 붙이고, 기양연(奇陽衍)의 서문을…
조선 시대 척암(拓菴) 김도화(金道和, 1825~1912)의 문집이다. 《원집》은 손자 헌주(獻周)가 유문을 수습하여 저자의 문인들과 1916년에 간역을 시작하여 1917년에 목판본 초간이 완성된 것을 알 수 있다. 《속집》은 금석문자 중 산일되어 원집에 싣지 못한 것과 시문, 서찰 중 수습되지 못한 것을 수집한 후 속…
조선 시대 임재(臨齋) 서찬규(徐贊奎, 1825~1905)의 문집이다. 저자의 문집은 문인 이화상(李華祥) 등이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집 편차하여 1910년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이후 권수(卷首)에 간재(艮齋) 전우(田愚)의 서문을 수록하고, 부록에 손자 갑수(甲洙)의 가장(家狀)을 추가한 목판본은 1931년…
조선 시대 극재(克齋) 노필연(盧佖淵, 1827~1885)의 문집이다. 저자의 두 아들 상익(相益)과 상직(相稷)이 유고를 절략(節略) 편차한 뒤 이만도(李晩燾)에게 교감을 받고 학정계(學正契) 사람들의 협조를 받아 1897년에 간행했다. 본집은 8권 4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두에 김익용(金益容)이 1887년에 지은 …
조선 시대 동호(東湖) 윤자학(尹滋學, 1830~1893)의 문집이다. 장남 상룡(相龍)이 유적을 정리하고 가장(家狀)을 지어 기우만(奇宇萬)에게 묘갈문과 서문을, 최익현(崔益鉉)에게 행장(行狀)을 받아 〈사례축홀(四禮祝笏)〉, 〈민보조약(民堡條約)〉을 덧붙여 2책으로 편차한 뒤 1899년에 활자로 인행하였다. 본집은 …
조선 시대 경재(景齋) 우성규(禹成圭, 1830~1905)의 문집이다. 저자의 문집은 족손 택와(擇窩) 하철(夏轍)이 가장(家狀)을 작성하고, 족질 성동(成東)과 기동(畿東)이 심석재(心石齋) 송병순(宋秉珣)에게 묘갈명을 받고, 박승동(朴昇東)에게 행장을 받았으나 서발문 등 간행과 관련된 자료가 없어 명확한 편찬 경위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