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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태2022한일관계사연구This paper looks at the lives of women during the Imjin War through Oh Hui-mun's wartime diary Swaemirok. When the war broke out, Joseon's w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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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록2020군사임진전쟁에서 조선군의 연전연패는 일본군이 한양, 평양까지 점령하는 사태로 전개되었다. 평양에서 의주의 선조를 압박하던 일본군은 후방지역에서 지역사회 중심으로 일어난 의병에 의해 전술적 변화를 할 수 밖에 없었다. 본 글은 이러한 기존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영천성수복전투의 전개과정 및 임진전쟁에서 차지하는 군사사적 특징을 검토해보고자 한다. 영천성전투, 영천전투 등의 용어와 달리 영천성을 수복한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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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태2018한일관계사연구이 논문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강화교섭 결렬 선언 이후, 정유재란이 발발하기 전까지의 시기를 대상으로 하여 조선의 재침 대응책을 살펴보았다. 강화교섭기 통신사로 일본에 파견된 황신은 교섭상황을 상세하게 기록했다. 그의 사행록인 『日本往還日記』를 통해 강화교섭의 결렬 당시의 상황에 접근할 수 있다. 황신은 일본에서 미리 사람을 보내어 이 소식을 전하였고, 부산에 도착한 후에는 조정에 보고서를 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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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태2018한일관계사연구임진전쟁기 명군과 일본군 사이에서 진행된 강화교섭에 조선은 개입하지 못했다. 그러나 강화교섭의 진행 상황을 파악하지 않고 전쟁에 대응하기는 어려웠다. 조선은 돌파구를 마련했다. 독자적으로 일본군과 접촉하여 정보를 얻고자 한 것이다. 본 연구에서는 그중에서도 전선에서 대치 중이던 조선군 장수들과 일본군의 접촉에 주목했다. 두 진영 사이의 교섭 내용은 일본군 나베시마 나오시게 가문 계열의 사료인 『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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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태2014본 논문은 임진전쟁기에 진행되었던 조선‧명‧일본 세 나라 사이의 강화교섭에 대한 연구이다. 강화교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쟁 발발 직전 쓰시마(對馬)와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와 조선의 교섭부터 분석 대상에 두어야 한다. 이후 이여송이 이끄는 명군의 평양 탈환 전투와 정유재침기의 전투시기를 제외한 전쟁의 전 기간 동안 강화교섭은 계속되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사망하고 일본군과 명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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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봉2011한일관계사연구임진전쟁은 16세기말 동아시아에서 일어난 국제전쟁이었다. 참전국의 숫자나 전쟁의 규모, 전후의 영향을 고려해 볼 때 동아시아의 역사에서는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이다. 이 전쟁의 결과로 동아시아의 국제질서가 전면적으로 재편되었다. 본 논문은 임진전쟁에 관해 중세 동아시아의 국제 전쟁이라는 성격을 중시해 외교적인 측면을 중심으로 재조명하였다. 본론에서 주로 논의한 내용은 아래와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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劉永奉2004남명학연구農圃 鄭文孚(1565-1624)는 서울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남다른 詩才를 보이며 성장하였다. 그는 7살 때 이미 「玉顔不及寒鴉色」이란 오언 고시로 시적인 재능을 드러내 보였고, 8살 때 지은 「初月」은 황진이의 「詠半月」로 와전되어 사람들 입에 널리 회자되었다. 그가 14세 되던 해에 陞補詩에 장원을 한 「月明花落又黃昏」은 우리 나라를 대표하는 科體詩로 明나라 사신에게 전해지기도 하였다.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