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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부사 이야가 변경의 정세를 비밀히 계달하다.
동래부사 이야(李壄)가 변경의 정세를 비밀히 계달하기를,
“역관 한후원(韓後瑗) 등이 와서 풍문을 고하기를, ‘범왜의 말에, 「강호(江戶)로부터 동병하는 일이 있어 바로 장기도(長崎島) 근처로 향하였다.」 고 하기에 관을 지키는 왜인을 보고 몰래 서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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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도 관찰사가 임진왜란 때 무공이 있는 참장 낙상지를 무열사에 모시도록 장계하다.
평안도 관찰사 홍양호(洪良浩)가 장계하기를,
“삼가 생각하건대, 우리나라가 가방을 재조하게 된 것은 황조의 은혜가 아님이 없으며 또한 우리나라를 구원한 여러 장수들이 의를 지니고 무공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를 구원한 공로로는 평양에서의 승리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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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략접반사 윤근수가 경략이 병부에 올린 게첩을 보고하다.
경략접반사 윤근수(尹根壽)가 치계하기를,
“이 달 26일에 경략이 대청에 앉아서 신들에게 이르기를 ‘조령(鳥嶺) 등 세 곳에 관을 설치하여 지키면 나는 오유충(吳惟忠)·낙상지(駱尙志)·심무(沈茂)의 군사를 주둔시킬 것이다. 내 처음 뜻은 본래 이와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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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명회전≫을 인용하여 강화의 잘못을 중국에 알릴 일을 의논하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신들이 삼가 ≪대명회전(大明會典)≫의 조훈을 보건대 ‘일본국은 조회를 한다 해도 실은 거짓으로 하기 때문에 홍무(洪武) 5년에 처음으로 절강(浙江) · 복건(福建)에 배를 만들어 왜적을 막았다.’ 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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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룡이 유총병을 면담한 일을 보고하다.
영의정 유성룡(柳成龍)이 아뢰기를,
“신이 어제 밤에 윤두수(尹斗壽) · 심충겸(沈忠謙)과 함께 유총병(柳總兵)을 보러 가서 한밤에야 파하였는데, 그 문답의 대개는 이러합니다. 신들이 일은 신속한 것을 귀중하게 여기는 것이라 오랜 시일을 끌면서 앉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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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구에게 약탈당한 절강 소흥위의 오진 등을 요동으로 보내다.
사역원 직장 김유진(金有珍)을 보내어 절강(浙江) 소흥위(紹興衛)의 삼강천호소(三江千戶所) 총기(摠旗) 오진(吳進) 등을 요동으로 압송하게 하였다. 처음에 오진 등이 양곡을 운반하여 대창(大倉)의 양곡을 싣고 북경으로 향하다가, 바다에서 왜구를 만나, 관군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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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를 잡다가 표류해 온 중국배를 후하게 위로하고 돌려보내다.
중국 배[唐船] 4척이 표류하여 연변 고을에 이르렀으므로, 사람을 보내어 위로해 보냈다. 명나라 진남위후소(鎭南衛後所) 백호(百戶) 유귀(柳貴) 등 3인과 기군(旗軍) 117명이 바람에 표류하여 전라도 옥구(沃溝)에 이르렀는데, 스스로 말하기를,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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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 종정무가 사송한 사미시라에게 쌀을 내리다.
대마도의 종정무(宗貞茂)가 사송한 사미시라(沙彌時羅)에게 쌀 40석을 내려 주었다. 처음에 사미시라가 중국의 절강(浙江) 등의 지방에 침구하여 진불로(陳佛奴)를 노략질하여 아내로 삼고 남자 부욱(符旭)을 종으로 삼았었다. 정유년 9월에 진불로 등을 거느리고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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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산에서 도망온 명나라 절강인 6명을 요동으로 보내다.
명나라 절강(浙江) 사람 진종(陳宗) 등 남녀 6명이 왜산(倭山)으로부터 도망해 와서 판사역원사(判司譯院事) 장홍수(張洪守)를 시켜 요동(遼東)으로 보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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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정벌 때 포로로 잡은 요동 등지의 남녀 142명을 요동으로 압송하다.
상호군(上護軍) 최운(崔雲)을 보내어, 대마도정벌 때 포로로 잡은 요동·절강·광동 등 여러 곳의 남녀 142명을 압송하여 요동으로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