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국에서 탐라 표류민 고려 등 18명을 돌려 보내다.
    일본국에서 탐라 표류민 고려(高礪) 등 18명을 돌려 보내었다.
  • 표류한 일본의 관선대사 여진 등과 대재부 소경전의 보통 상선에 탄 78명 등을 그 나라로 호송하다.
    …… 이 달에 일본의 관선대사(官船大使) 여진(如眞) 등이 송나라에 들어가 불법을 배우려고 떠났다가 풍파를 만나 표류하여 승려, 속인 합계 230명은 개야소도(開也所島)에 닿았으며 265명은 군산(群山), 추자(楸子) 두 섬에 도착하였다. 한편 대재부(大宰府)…
  • 흑적, 은홍, 송군비 등이 되돌아왔는데 황제가 고려국왕을 꾸짖다.
    흑적(黑的), 은홍(殷弘), 송군비(宋君斐) 등이 되돌아왔다. 황제가 꾸짖어 이르기를, “전번에 내가 사신을 보내 일본을 회유하려고 당신에게 길 안내할 것을 위임하였더니 당신은 이 말 저 말로 핑계하면서 마침내 헛걸음을 하고 돌아오게 하였다. 생각건대 …
  • 반부로 하여금 몽고의 공문과 우리나라의 국서를 가지고 일본에 가게 하다.
    …… 기거사인(起居舍人)기거사인(起居舍人)고려시대 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에 속한 관직이다. 고려시대 관제가 정비된 문종 때 설치된 것으로 종5품관 1명을 두었으며, 1356년(공민왕 5) 정5품관으로 승격하였다. 기거랑(起居郞)과 같이 국왕에 대한 간쟁과 봉박…
  • 세자 왕심이 몽고의 단사관 불화, 맹기 등과 함께 돌아오다.
    세자 왕심이 몽고의 단사관(斷事官) 불화(不花), 맹기(孟祺) 등과 함께 돌아왔다. 왕이 교외까지 나가 마중하였는데 황제의 조서에 이르기를, …… 또 하나의 조서에서는, “…… 예를 들면 전년에 어떤 사람이 나더러 고려가 남송(南宋), 일본과 교통을 한…
  • 불화, 맹기 등이 돌아갈 때 일본과의 교통한 것에 대해 표문을 올려 해명하다.
    불화(不花), 맹기(孟祺) 등이 돌아갈 때 왕이 추밀원사 김련(金鍊)으로 하여금 동반하여 가게 하였으며 그 길로 청혼을 하였다. 그 표문은 다음과 같다. …… 또 다른 글에 이르기를, “조서에서 말한바 남송의 배를 떠나보내었다는 일은 전번에 질문을 받았…
  • 몽고가 일본에 국신사로 비서감 조양필 및 홍다구 등 40여 명을 보내왔다.
    몽고가 일본에 국신사(國信使)로 비서감 조양필(趙良弼) 및 홀림적(忽林赤), 왕국창(王國昌), 홍다구(洪茶丘) 등 40여 명을 보내왔다. 그들이 가져온 조서에 이르기를, “내가 생각하건대 일본은 예로부터 중국과 교통하여 우호 관계를 맺어 왔고 또 당신의…
  • 조서에 일본을 정벌하기 위하여 군대를 파견하고 둔전을 경작하라고 이르다.
    몽고가 흔도(忻都) 및 사추(史樞) 등을 보내 아해(阿海)를 대신케 하였다. 그 조서에 이르기를, “내가 일찍이 사신을 보내 일본을 개유하였는데 일본이 완미하게 고집을 부리고 문호를 열지 않는다고는 하지 않는다. 그러나 좋은 말로 알아듣게 하기는 힘들게…
  • 세자 왕심이 일본 정벌 사업을 조금이라도 방조하겠다며 원나라에서 돌아오다.
    세자 왕심(王諶)이 원나라에서 돌아왔다. 황제가 단사관 불화(不花), 마강(馬絳) 등을 파견하여 세자와 함께 왔다. 중서성에서 통첩을 보내기를, “세자 왕심의 말하는 바에 의하면 ‘우리 부자가 대를 이어 조근(朝覲)하고 특별한 은혜를 받았으므로 우리나라…
  • 왕이 조양필을 초대하여 수고를 위로하고 은 3근과 저포 10필을 선물로 주다.
    왕이 인견하여 수고를 위로하고 은 3근과 저포 10필을 선물로 주었다. 달로화적 이익(李益)도 역시 물품을 선사하니 조양필(趙良弼)이 말하기를, “이것은 너희들이 고려 인민을 침해하고 착취해서 얻은 것이로다.” 라고 하면서 받지 않고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