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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변사가 도관찰사는 정사가 일관되지 않을 염려가 있으니 창설하지 말 것을 청하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정사가 여러 문에서 나오면 비단 조정에 큰 해가 될 뿐 아니라 영진의 체모에도 두 갈래로 나눌 수는 없는 것입니다. 감사 송언신(宋言愼)은 부임한 지 오래되지 않았으나 또 이원익(李元翼)이 이미 도순찰사로 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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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의 인심이 흉흉하여 다시 행행할 일을 논의하다.
상이 평양에 있었다. 이때에 왜적들이 멀리서 온 까닭에 지치고, 사방의 곡식을 말끔히 치워버렸기 때문에 노략질하여도 소득이 없자, 가마니에 모래를 담아 강가에다 커다랗게 쌓아 위장해 놓고서 우리에게 축적된 곡식이 있는 것처럼 과시하였고, 강가에서 말을 달리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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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원수 김명원이 중국 군대가 강을 건넜으나 향도할 사람이 없음을 치계하다.
도원수 김명원(金命元)이 치계 하였다.
“명나라 병사 1천 명이 이미 강을 건넜으나, 전면의 각 고을이 다 비고 창고의 곡식도 흩어져 없어졌으며 군졸도 도망하여 숨어버렸기 때문에 결코 접응할 길이 없습니다. 지금 비록 이윤덕(李潤德) 등에게 이문을 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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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평안감사 평양이 함락될 당시의 상황을 치계하다.
전 평안도관찰사 송언신(宋言愼)이 치계하기를,【언신은 평양이 함락당한 뒤에 행방을 알 수 없어 조정에서 이미 체직시켰는데, 체직된 줄도 모르고 이처럼 장계한 것이다.】
“14일 왜적이 왕성탄(王城灘)을 건너오자, 도순찰사 이원익(李元翼)과 방어사 이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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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사가 평양이 함락된 뒤 숨은 감사 송언신과 대가를 소홀히 한 현감 김호수의 국문을 청하다.
양사가 아뢰기를,
“평양이 함락된 뒤에 그 방백(方伯)은 행재소로 달려왔어야 하는데도 전 관찰사 송언신(宋言愼)은 패전하여 흩어진 직후부터 계속 산읍만을 찾아 오직 깊숙이 들어가지 못할까 염려하여 마치 군졸이 도망하듯이 하여 군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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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사가 송언신의 일을 아뢰다.
양사가 또 송언신(宋言愼)의 일을 아뢰었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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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사가 도망간 송언신의 나국과 호종 신하에게 명분없이 상을 내리는 일을 논하다.
양사가 아뢰기를,
“신하된 자가 진실로 사람의 마음이 있다면 당연히 가슴을 치면서 달려가 위급을 구하기에 겨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송언신(宋言愼)은 자신이 본도 방백의 책임을 맡고 있었는데도 성이 함락된 뒤에 곧 산골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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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사가 전 관찰사 송언신의 추국을 청하다.
양사가 아뢰기를,
“전 관찰사 송언신(宋言愼)을 빨리 잡아다가 추국하여 율에 따라 정죄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할 수 없으니 소란스럽게 하지 말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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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변사가 순찰사 차정에 대하여 아뢰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북적의 소식이 매우 급하여 순찰사 송언신(宋言愼)이 이미 철령(鐵嶺)을 넘었다고 합니다. 양덕(陽德) 등지를 파수하는 일은 관계되는 바가 매우 중하니 서둘러 조처하여야 합니다. 행재소(行在所)행재소(行在所)임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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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두수 등을 인견하고 양덕의 적에 대한 방어, 군량 조달, 중국군의 전력 등을 논하다.
좌의정 윤두수(尹斗壽), 예조판서 윤근수(尹根壽), 공조판서 한응인(韓應寅), 병조판서 이항복(李恒福), 호조판서 이성중(李誠中), 이조판서 이산보(李山甫), 대사헌 이덕형(李德馨), 형조판서 신잡(申磼)을 인견하였는데, 도승지 유근(柳根), 봉교 기자헌(奇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