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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일2016한일관계사연구조선 정부는 공무역(公貿易)에서 일본이 가져온 물품에 대하여 15세기 초부터 면포 즉 공목(公木)으로 결제해 주기 시작했다. 17세기 중엽~19세기 중엽에는 공목의 일부를 쌀로 바꾸어 지급했는데 그것을 공작미(公作米)라 불렀다. 왜관을 통해 대마도로 건너간 조선의 공목과 공작미는 일본 대마도 경제의 기초를 이루었다. 이 글에서는 1860년대 공목과 공작미 문제를 분석하였다. 1862년에는 조선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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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成一2012한일관계사연구17세기에서 18세기로 넘어가는 시기에 동아시아의 銀 유통은 커다란 변화를 보였다. 더구나 울릉도-당시 일본에서는 竹島라 불렀음-의 귀속 문제를 놓고 조선과 일본이 갈등을 빚고 있을 때 발생한 일본의 은화 改鑄는 두 나라의 무역관계를 더욱 긴장시키고 있었다. 일본의 德川幕府는 1695년에 새로운 銀貨를 발행하였다. 이것은 도쿠가와 막부 출현 이후 약 100년 동안 유통되고 있던 순도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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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휘영2011일어일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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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훈2005한일관계사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