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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도식2014한일관계사연구조선의 서쪽에 있는 평안도는 서북쪽으로 압록강 건너 울창한 산림을 경계로 여진과 맞닿아 있었다. 평안도의 지리적 상황이 이러했으므로 압록강 건너의 여진은 태종 이후 주로 평안도의 江界등 이른바 7읍으로 침입해 왔다. 평안도 군사들은 거의 대부분 변경에서 방수했기 때문에 쉴 수 있는 날이 거의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 놓여 있던 평안도 군사의 고통을 더욱 가중시킨 것은 赴京使臣들을 迎送하는데 따른 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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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민2010한일관계사연구이 글에서는 조선초 집권층의 여진에 대한 인식과 그 변화과정을 여진 관계의 추이와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조선건국 이전부터 태조는 동북면 여진인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고, 이들을 조선의 영향력 하에 두었다고 자신했다. 태종 초년에도 전대처럼 여진과의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1405년에 명의 초유로 동북면 여진인이 응하여 그들과의 관계가 악화되었다. 결국 1406년에 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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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주2009한일관계사연구본고는 『朝蘇王朝實錄』에 냐타냐는 覆野人에 대한 ‘字小’의 용례 들을 소개하고, 각각의 용례가 쓰여 지는 배경을 파악함과 동시에 조선이 對馬島 倭人 및 女眞 勢力과의 관계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지 파악해 보고자 히였다 ‘자소’는 대부분은 ‘字小以仁’, ‘字小之義’, ‘以大字小’, ‘字小之恩’,‘字小之仁’, ‘字小之心’ 등의 관용구로 내타내며 ‘字小’라는 용어로만 나타나기도 하는 것을 확인할 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