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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기대2021인문과학연구조선 전기의 북방 국경선은 함길도 경원부였다. 이 경원부는 조선왕조의 발상지라는 뜻으로 ‘경원’이라 하였다. 이렇게 경사스러운 위치였다고는 하지만 이 지역은 조선, 여진, 명나라의 분쟁지역이었다. 그렇지만 조선은 성지였기 때문에 지켜야 했고, 지키는 과정에 많은 어려움이 있어 결국 포기하였다. 그러나 경원부를 포기하면서 더 큰 문제들이 발생하자 다시 회복하였다. 그러면서 조선의 국경은 경원부로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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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록2017군사The Ming Dynasty is the history of Chinese lasted by Han established unified dynasty, in its founding to destruction in more than 200 years, 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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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민2014This study examines the diplomatic relation between the Jurchen and Joseon, and also analyses the diplomatic system which Joseon tried to est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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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주2012한일관계사연구조선 초기부터 북방의 경계를 두만강과 압록강으로 하였다는 인식이 있었던 반면 조선의 영역은 두만강과 압록강 이북이라는 인식이 있어 왔다. 따라서 조선은 얼마든지 두만강이라는 경계를 넘어 그 지역에 5진과 같은 鎭을 설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본고에서 살펴보는 明宗대 伊應巨島(또는 仍巨島)의 子母鎭 설치는 조선의 영역인식과 관련되어 실행된 사례이다. 이응거도는 慶興鎭에서 북쪽으로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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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민2010한일관계사연구이 글에서는 조선초 집권층의 여진에 대한 인식과 그 변화과정을 여진 관계의 추이와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조선건국 이전부터 태조는 동북면 여진인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고, 이들을 조선의 영향력 하에 두었다고 자신했다. 태종 초년에도 전대처럼 여진과의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1405년에 명의 초유로 동북면 여진인이 응하여 그들과의 관계가 악화되었다. 결국 1406년에 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