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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자2020한일관계사연구본고에서는 한국과 일본에서 지금까지 논의되었던 임진・정유재란의 전쟁 원인에 대해 최근 일본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연구 성과를 소개하고, 정유재란 발발배경으로 논의되고 있는 일본 측의 ‘조선왕자의 來日 문제’를 하데요시가 필리핀諸島長官에게 보낸 서장을 통해 ‘조선 남부 경상도지역의 영토 확보와 무역재개’와 관련 있음을 고찰하였다. 또한 전쟁 발발 전후로 히데요시가 발급한 문서를 보면 임진왜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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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태2018한일관계사연구이 논문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강화교섭 결렬 선언 이후, 정유재란이 발발하기 전까지의 시기를 대상으로 하여 조선의 재침 대응책을 살펴보았다. 강화교섭기 통신사로 일본에 파견된 황신은 교섭상황을 상세하게 기록했다. 그의 사행록인 『日本往還日記』를 통해 강화교섭의 결렬 당시의 상황에 접근할 수 있다. 황신은 일본에서 미리 사람을 보내어 이 소식을 전하였고, 부산에 도착한 후에는 조정에 보고서를 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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津野倫明2017한일관계사연구In this paper, I will first present my theory that Japan’s purpose during the Jeongyu War was to conquer southern Korea. Secondly, I will conf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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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덕기2012한일관계사연구히데요시가 對馬島主 宗儀智에게 조선 침략의 뜻을 처음으로 표명하는 것은 1586년 6월의 일이다. 규슈를 평정하고 나면 조선으로 들이닥칠 터이니 준비하라는 것이었다. 다음해 6월엔, 20만의 정벌군으로 규수에 출정나각 히데요시가 대마도주에게 조선국왕의 직접 來朝를 명령했다. 흥미로운 것은 조선국왕이 대마도주에게 복속된 존재로 히데요시가 인식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조선국왕의 來朝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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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덕기2009한일관계사연구임진왜란 연구에서 여진족에 대한 접근은 대체로 미미하다. 그러나 임진왜란기를 『선조실록』을 중심으로 검토해 보면 첫째 ‘南倭北虜’的 위기상황이라고 조선이 인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은 ‘남왜’와 전쟁한 것만이 아니었다. 동북방과 서북방의 ‘북로’와도 첨예하게 대립한 상황이었다. 남북으로 적을 맞고 있다고(‘腹背受敵’) 인식하고 남북으로 환난을 당하고 있다고(‘腹背之患’)우려하여 그 극복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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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광2008한일관계사연구2008년에 사용될 일본 고등학교 역사교과서 6종에서 기술된 임진왜란에 대한 내용을 분석했다.교과서에 기술된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침략전쟁의 배경으로 표현상에는 약간씩 차이가 있으나 궁극적으로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재편’을 위한 명나라 정복 야망을 대표적인 이유로 들고 있다.부분적으로 무역 부활,내부적 모순의 대외적 표출 등을 언급한 교과서도 있기는 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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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종현2006한일관계사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