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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 21년(1143) 계해년
21년 봄 정월
초하루 기축일. 일식(日食)이 있었다.
을미일. 금나라에서 낙주방어사(洛州防禦使) 소사정(蕭嗣貞)을 보내 왕의 생일을 축하했다.
무술일. 금나라 사신을 위해 대관전(大觀殿)에서 잔치를 베풀었다.
임인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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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 22년(1144) 갑자년
22년 봄 정월
기미일. 금나라에서 대부감(大府監) 소예(蕭隸)를 보내 왕의 생일을 축하했다.
경신일. 왕이 제사를 위해 남교(南郊)에서 하루 밤을 묵으며 몸을 정결히 정결히 재숙(齋宿)은 재계(齋戒)하고 하룻밤을 지낸다는 말이다. 『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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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 23년(1145) 을축년
23년 봄 정월
계축일. 금나라에서 한림직학사(翰林直學士) 조동(趙洞)을 보내 왕의 생일을 축하했다.
을묘일. 왕이 수문전(修文殿)에 친히 도량(道場) 도량 법회(法會)․법석(法席)․재(齋)라고도 하는 불교의식 가운데 하나인 도량은 고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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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 24년(1146) 병인년
24년 봄 정월
정축일. 금나라에서 위주방어사(衛州防禦使) 완안승(完顔昇)을 보내 왕의 생일을 축하했다.
무인일. 왕이 태자로 하여금 예부시랑(禮部侍郞) 정습명(鄭襲明)을 데려다가 『서경(書經)』의 「대우모(大禹謨)」를 강론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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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식의 논평
사관 김부식(金富軾)은 다음과 같이 논평했다.
“인종(仁宗)은 젊은 시절부터 재능이 풍부해 음악에 밝았으며 글쓰기와 그림에 능했다. 또 독서를 즐겨 손에서 책을 놓은 법이 없었으며 때로는 밤을 꼬박 새우기도 했다. 왕위에 오른 후, 명경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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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부의 논평
사관 김신부(金莘夫)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예종이 말년에 자신의 처족 처족 방유(房帷)는 유방(帷房)과 같다. 주렴을 내린 방으로 규방(閨房)을 말한다. ‘조지여계무제서(趙至與稽茂齊書)’에 “뛰어노는 무리들 사이, 아양 떠는 주렴 내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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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종 총서
의종장효대왕(毅宗莊孝大王)의 이름은 왕현(王晛)이요. 자는 일승(日升)이며, 원래 이름은 왕철(王徹)이다. 인종(仁宗)의 맏아들로 모친은 공예태후(恭睿太后) 임씨(任氏) 임씨(1109~1183) 중서령 임원후(任元厚)의 딸이며, 문하시중 이위(李瑋)의 외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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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종 즉위년(1146) 병인년
3월
갑신일. 인종(仁宗)을 장릉(長陵)에 장사지냈다.
무술일. 왕의 모후를 왕태후(王太后)로 높였다.
여름 4월
경술일. 우박이 크게 쏟아졌다.
○ 왕의 생일을 하청절(河淸節)로 정한 후 신하들의 하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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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종 원년(1147) 정묘년
여름 4월
신유일. 왕이 외제석원(外帝釋院)에 행차했다.
임술일. 우박이 쏟아졌다.
5월
갑자일. 이유창(李愈昌) 등을 급제시켰다.
경오일. 송나라 도강(都剛) 도강 강(綱)은 화물을 현장에 나가 직접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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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종 2년(1148) 무진년
봄 정월
초하루 경신일. 신년 하례행사를 생략했다.
○ 친동생 왕경(王暻) 왕경(?~?) 공예태후(恭睿太后) 임씨(任氏)가 의종을 대신하여 왕위에 세우려 했던 인물로 의종의 동생이다. 왕경은 도량이 있어 사람의 마음을 얻었다고 하는데 이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