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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鄭文
정문(鄭文) 정문(?~1105) 홍문공(弘文公)이 된 초계 정씨(草溪鄭氏) 정배걸(鄭倍傑)의 후손이다. 이 집안은 정배걸 때부터 성장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공신이었으며, 당대를 대표하는 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의 유복자 정문(鄭文)은 요직을 거쳐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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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劉載 부 신안지愼安之
신안지(愼安之) 신안지(?~?) 신안지의 후손들이 거창을 본관으로 삼았다. 거창 신씨가 언제부터 거창을 본관으로 하였는지는 자세하게 알 수 없으나 8세(八世)인 신성(愼成)의 부인이 거창 유씨(劉氏)이므로 신성 대 즉 고려 고종․원종 년간에 거창에 세거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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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증康拯
강증(康拯)은 서해도(西海道) 영강현(永康縣)(지금의 황해남도 강령군 및 인천광역시 옹진군) 사람이다. 집안이 대대로 한미했고 별다른 재주도 없었으나 행동이 조심스러웠고 근실했다. 조부 강인우(康仁祐)가 나라에 봉사하다 죽었으므로 예에 따라 양온사(良醞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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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자번洪子藩
홍자번(洪子藩)은 자가 운지(雲之)로, 좌복야(左僕射)를 지낸 홍관(洪瓘) 홍관(?~1126) 홍관(洪灌)이라고도 하며, 숙종 때 과거에 급제한 후 인종 때까지 수사공(守司空)․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를 역임한 문신관료이다. 홍관에 대해서는 『고려사』 권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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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함鄭諴
정함은 인종(仁宗) 때 내시서두공봉관(內侍西頭供奉官) 내시서두공봉관 문종 30년(1076)에 남반직을 관등(官等)을 하향 조정하면서 신설된 관직이다. 문종은 원래 남반 출신의 최고직이던 4품의 남반선휘사(南班宣徽使)를 폐지하고 7품의 내전숭반(內殿崇斑)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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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의朴義
박의(朴義)는 밀양(密陽)(지금의 경상남도 밀양시) 사람으로, 매와 개를 바쳐 충렬왕의 총애를 받았으며 거듭 승진해 장군(將軍)이 되었다. 앞서 밀성군(密城郡)(밀양) 사람 조천(趙阡) 조천(?~?) 원종~충렬왕 때 일선현령(一善縣令)․장사(長史)를 역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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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주石冑
석주는 그 출신과 가계를 알 수 없다. 벼슬은 밀직(密直)까지 올랐고 아들 석천보(石天補)와 석천경(石天卿)은 모두 충렬왕의 총애를 받았다. 석천보가 좌복야(左僕射)로 있을 때 왕을 호종해 봉은사(奉恩寺)에 갔는데, 그가 백관을 이끌고 가는 것을 본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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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겸李資謙
이자겸(李資謙)은 중서령(中書令) 이자연(李子淵)의 손자이자 경원백(慶源伯) 이호(李顥) 이호(?~?) 이호는 이자연(李子淵)의 여섯 번째 아들로 호부낭중(戶部郎中)을 역임하고 수사공(守司空)․경원군개국백(慶源郡開國伯)․상주국(上柱國)이 되었다. 이호는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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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민李義旼
이의민은 경주사람이다. 그 부친 이선(李善)은 소금과 체를 팔아 생계를 이었으며, 모친은 연일현(延日縣) 옥령사(玉靈寺)의 노비였다. 그가 어릴 때 이선이 자기 아들이 푸른 옷을 입고 황룡사 구층탑으로 올라가는 꿈을 꾸고서, 아들이 필시 귀한 신분이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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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사위崔士威
崔士威, 事穆宗, 累官刑部尙書. 顯宗初, 爲統軍使, 與康兆等, 禦契丹. 士威率諸將, 分軍出龜州北恧頓․湯井․曙星三道, 與契丹戰敗績. 二年, 叅知政事, 轉吏部尙書. 後與張延祐․皇甫兪義, 獻議罷東京留守, 置慶州防禦使, 又廢十二州節度使, 置五都護七十五道安撫使. 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