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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영2022역사와 경계본고는 실학의 ‘實用’과 ‘近代性’의 정신이 다산의 형정사상에 어떻게 녹아있는가를 구명하고자 하였다. 요컨대 다산의 사상에 있어서 진리는 삶에 유용한 것이어야 한다. 따라서 형정부문에 있어서 ‘실용’이라 함은 민들의 기본적 인권이 보호를 받고 사법적 정의가 이루어지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그 무엇이다. 다산은 형정의 폐단을 지적하고 그 개선책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그러한 개혁이 없으면 실용적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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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원2020民族文化硏究The origin of Korean studies originated from the modern attribute of the recognition and explanation of nations and ethnic units in relation to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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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창은2019한국문학이론과 비평In the early 1970s, Korean novelists actively wrote about the U.S. Army bases (villages). They narrated U.S. Army bases (villages) so as to con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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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미2017한국문화연구본고의 목적은 식민지기 줄다리기를 둘러싼 갈등 양상을 검토함으로써 당대 조선사회에서 전개되었던 전통오락 통제의 한 단면을 고찰하는데 있다. 식민지기 조선인의 오락문제에 관한 담론에는 세시풍습에 해당하는 전통오락이 주로 언급되면서도 그것을 오락으로 간주하는 않는 상반된 시선이 교차하고 있었다. 그러나 전통오락은 `오락 不在`라는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각광을 받게 되는, 일견 모순된 양상 속에서 그것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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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2017문화와 융합본 논문의 목적은 해학(海鶴) 이기(李沂, 1848~1909)는 조선말에서 대한제국기, 그리고 일제가 대한제국을 강탈하던 격동의 시기를 살았던 인물이다. 초기 전통적인 유학자의 모습에서 독립운동가, 근대사상가로 변화하였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행동하는 지식인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던 인물의 시에 나타난 근대성을 밝히는 것이다. 급변하는 시기를 겪었던 그는 생전에는 활발하게 잡지발간운동에 참여하여 대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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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종석2015사회와 철학오늘날 한국사회와 조선사회의 유교전통은 어떤 관계 속에 있는가? 이 글은 이 물음을 한국 근대성(m odernity)에 대한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과 관련하여 다루어보고자 한다. 우리의 전통, 특히 유교적 전통과 한국사회의 근대성 사이의 관계에 대한 물음은 한국사회 발전 경로의 고유성이 무엇인지를 해명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이 글의 주된 목적은 오늘날 한국사회의 근대성을 해명하는 작업에서 가장 주목할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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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우2015한일관계사연구본 논문은 개항기 조선에서 의학적 지식의 보급과 위생 개념의 변화를 통해 근대성의 수용과 위생문화의 보급을 고찰하기 위함이다. 전염병은 역사 속에서 단순한 질병이 아니라 사회 문화적인 현상이었다. 본 논문에서는 근대성을 막연한 두려움에서 전염병을 통제의 대상으로 여기고 위생의 제도화의 과정에서 합리적인 “의사소통 행위”의 과정을 거치게 되는 과정에 주목했다. 또한 합리적인 의사소통 행위(정부기관의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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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준2014한국민족문화이 글은 한말·일제초기에 쓰인 미신이라는 단어의 용례를 분석함으로써, 서구적·식민주의적 문명화의 논리를 마주한 시점에 나타났던 당대 한국인들의 문화적 대응양상을 추적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당대 한국사회가 나름의 역사적·이념적 배경을 바탕으로 서구적·식민지적 근대화의 논리를 문화적으로 전유하고, 이에 대항하는 논리들을 만들어내고 있었음을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 우선 2장에서는 미신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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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리2013이 논문은 1890년대로부터 1930년대까지 한국 근대기의 잡지 표지 이미지를 살펴서 그 의미와 양식적 연원을 밝히고, 이를 통해서 근대의 대중적 시각 이미지의 장을 재구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구체적으로는 잡지 출판의 시원적 기간인 1896~1900년대의 협회지, 학회지, 계몽교육잡지와 1910년대의 신문관 발행 잡지, 1920년대의 여성잡지와 아동잡지, 1930년대의 사회주의 잡지와 시사종합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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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령2012民族文化硏究임종국의 친일파연구를 중심으로 한 역사서술은 광범한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학계에서 충분히 논구되지 못했다. 그 이유는 그의 역사서술이 ``전`` 양식을 취할 만큼 이야기하기 혹은 문학적 서술방식을 배제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다 도덕적 담화이기를 거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과학적일 것을 요구받는 근대의 역사학에서 소외되었지만, 이 글은 그러한 특징이 근대성과 문명화 담론이 지배하고 있는 최근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