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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상2020진단학보The study aims to shed light on the positions and status of staff clerks(Young-li) in charge of the military administration of Navy Headquarter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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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2018문화재This study examined the costumes of the characters in the painting titled Hig yongru Banghwoedo, which was designated as National Treasure No.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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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목2016한국고전연구조선후기에 비양반 출신의 학동들도 서당이나 서재에 출입하며 한문을 익히고 기초적인 유교 경전을 공부했다. 그러나 이들은 유교 경전을 공부해도 과거시험을 통해 정식 관리가 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따라서 이들의 수학 목적은 양반의 그것과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후에 면임이나 향리가 되었을 때, 업무를 능숙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실무 지식을 습득하려고 했다. 이때 사용했던 교재가 바로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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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학2014이 논문은 족보, 선생안, 그리고 토지조사부 등을 통해 조선후기 안동 향리의 감영리의 독점과 계승양상, 거주지와 항렬을 통한 동족의식, 그리고 토지 소유규모를 양반과 비교함으로써 그들의 존재양상을 검토한 것이다. 18, 19세기 향직 가운데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감영의 영리는 일부 군현의 향리가문에 의해 독점되었다. 안동의 안동권씨와 안동김씨는 경상감영의 영리를 독점한 대표적인 향리가계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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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철2013한국민족문화조선후기 특히 19세기 세도정치기 지방 양반들 특히 재지사족들의 사회적 위상은 갈수록 약해지고 있었다. 이들이 전통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양반’이라는 신분적 우위는 관직에의 접근성이 약해짐에 따라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지방 양반으로서의 향촌사회 지배력은 ‘수령-이?향 지배체제’의 확립과 ‘鄕品’과 ‘新鄕’ 등의 도전으로 분화되고 약화되었다. 이렇듯 약화된 위상 속에서 재지사족들은 일반 농민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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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2001본 연구는 봉건사회의 해체기였던 19세기 전반 지방의 말단 실무행정을 담당했던 향리들의 부정·부패의 배경을 당시의 모순된 사회제도 속에서 찾아보고자 하였다. 조선시대 鄕吏制度는 다음과 같은 구조적 모순을 내포하고 있었으며, 여기에 당시의 賦稅制度의 모순이 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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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자1986高麗는 건국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제반 문물제도를 정비하고 정착시킴으로서 중세국가로서의 체제를 정비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鄕吏制度도 그 가운데 하나로서 고려초부터 각지에 할거하고 있는 호족세력을 중앙의 지배하에 흡수, 통합하기 위하여 마련된 것이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