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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도 백령진의 아전 ․ 관노비를 새로 설치한 영강진에 옮기고 강령진이라 일컫다.
황해도 백령진(白翎鎭)이 일찍이 문화현(文化縣)에 합쳐져 있었는데, 그 고을의 아전․관노비를 새로 설치한 영강진(永康鎭)에 옮겨 소속시키고, 강령진(康翎鎭)이라 일컫게 하였다. 처음에 백령진(白翎鎭)이 해도로서 주위 180여 리에 비옥한 땅이어서, 고려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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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도 순위량의 병선 정박지 선정에 대해 의논하다.
황해도 순위량(巡威梁)의 선군들이 상언하기를,
“본량(本梁)의 병선은 처음에는 해주(海州)의 추관(槌串)에 정박하여 매우 편리하였었는데 을사년에 무지관(無知串)으로 옮겼습니다. 본관(本串)은 땅이 모두 모래와 돌이며 또 사면으로 바람을 받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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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달생이 황해도 도순찰사로 순행한 후 비변책을 조목별로 올리다.
지중추원사 성달생(成達生)이 상소하기를,
“신이 지난 가을에 황해도도순찰사로서 연변 각 고을을 순행해 살피며 가만히 비변책(備邊策)을 생각하였사온데, 뒤에다 조목별로 열거하오니 상재하시어 시행하시기를 엎드려 바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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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에서 강령진을 폐한 것에 대해 논죄하다.
의정부에서 사인(舍人)을 보내어 아뢰기를, ……
…… 또 황해도도체찰사 정분(鄭苯)이 아뢴 적이 있는 강령진(康翎鎭)을 폐하여 본진으로 옮기고 군민으로 하여금 극성(棘城)을 지키도록 하는 일에 대하여 좌의정 황보인(皇甫仁)·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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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령진을 폐하지 말도록 청하다.
의정부에서 사인(舍人)을 보내어 아뢰기를,
“전일 강령진(康翎鎭)의 일을 신 등으로 하여금 다시 헌의하라 하였습니다. 신 등의 생각으로는 강령 곁의 등산곶이[登山串]는 해구가 침투해 오는 첫길로서, 관방이 없을 수 없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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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에서 강령진의 혁파가 불가함을 아뢰다.
의정부에서 병조의 정문(呈文)에 의하여 아뢰기를,
“강령진(康翎鎭)은 해적들이 침입해 오는 첫 지역이니, 그 방어가 가장 긴요하고 중대하므로 경솔히 혁파(革罷)할 수가 없습니다. 황해도(黃海道) 시위정군(侍衛正軍) 속에서 극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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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조의 건의로 각도 진군의 정액을 마감하고 3번으로 나누어 교대케 하다.
병조에서 아뢰기를,
“제도(諸道)의 진군은 긴요하고 더딘 것을 분간하지 아니하여 혹은 많고 혹은 적으니, 이제 다시 정액을 마감하고 3번으로 나누어 2달에 서로 갈마들게 하소서. 뒤에 갖추 기록합니다. 충청도 내상 정군은 5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