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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의정 윤두수가 내강을 방어하고 있는 상황을 보고하다.
좌의정 윤두수(尹斗壽)가 치계 하였다.
“당일 유시에 강 상류의 조방장(助防將)인 용천군수 허숙(許淑)의 치보에 ‘11일 진시에 왜적이 석회탄(石灰灘)에 이르자 여울을 지키던 군졸들이 모두 흩어졌으므로 형세가 외로워 대적하기 어렵기에 내강으로 퇴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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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룡을 만나 청천강의 부교 설치, 군량 조달, 대가의 행행 등을 논의하다.
풍원부원군 유성룡(柳成龍)이 평양에서 와 상을 뵙자, 상이 이르기를,
“명나라 병사들에게 공급할 일로의 물품은 이미 예비되었는가? 청천강(淸川江)의 부교는 명나라 병사가 도착하기 전에 왜적이 만약 먼저 온다면 빨리 철거해야 되는데, 경은 그것을 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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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원이 이일 ․ 이천 등 장수들이 간 곳을 모른다며 전투에 소극적이라고 보고하다.
김명원(金命元)이 치계 하였다.
“병사 이빈(李薲)이 더위를 먹어 아직 회복되지 않았고 또한 다른 장수가 없기 때문에 신의 종사관인 판관 윤안성(尹安性)을 대신 보냅니다. 이일(李鎰) · 이천(李薦) · 김억추(金億秋) · 박석명(朴錫命) 등이 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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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억추를 안주목사로, 윤안성을 숙천부사로 삼다.
김억추(金億秋)를 안주목사(安州牧使)로, 윤안성(尹安性)을 숙천부사(肅川府使)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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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변사가 충청병사 신익의 교체를 청하고, 김천일 등 의병장에게 관직을 내리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충청병사 신익(申翌)은 두 번씩이나 대군을 일으켰으나 일시에 무너져서는 흩어져버렸으니 통어하는 재능이 없어 다시는 근왕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로 하여금 백의종군하게 하소서. 그 도의 조방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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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사가 군율을 잃은 김여율 ․ 이덕남 ․ 김억추 등을 처단하라고 청하다.
양사가 아뢰기를,
“사변이 발생한 뒤로 제장들이 군율을 잃은 탓으로 적세가 이렇게 된 것입니다. 우선 그 중에 더욱 심한 자를 들어 아뢰겠습니다. 장연현감(長淵縣監) 김여율(金汝嵂)은 5월 18일 임진강 전투에 척후장(斥候將)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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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변사가 군율을 잃은 장수는 우선 공을 세울 기회를 주자고 청하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군율을 잃은 장사는 진실로 군법으로 처단한 뒤에야 기율이 밝아지고 군정이 진작될 것입니다. 강동외탄(江東外灘) 및 왕성탄(王城灘)과 임진의 조해랑(照海浪)에서 군율을 잃은 장수에 대하여 인정이 모두 분하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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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변사가 적전에서 도망친 김억추 ․ 허숙을 조치하라고 청하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전쟁이 일어난 이후로 정사에 은대가 많았기 때문에 기율이 엄하지 않고 군정이 이완되었으니, 제때에 기강을 확립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강동(江東)과 강탄(江灘)이 무너진 것은 오로지 김억추(金億秋) · 허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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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도에 있는 병마의 숫자를 헤아려 개진하다.
답보하면서 헤아려 개진한 것은 다음과 같다.
경기도 강화부(江華府)에 주차(駐箚)한 전라도절도사 최원(崔遠)의 군사 4,000명, 경기도순찰사 권징(權徵)의 군사 400명, 창의사 김천일(金千鎰)의 군사 3,000명, 의병장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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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변사에서 중국군이 참여하지 않더라도 단독으로 병사를 초발하여 왜군을 공격할 것을 건의하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흉적이 변경에 둔취하여 더욱 창궐하고 있는데도 중국군은 이를 소탕할 뜻이 없습니다. 중국에서 새로 군대를 출동시킨다고 하더라도 4~5개월 뒤에라야 나아오게 되니 앉아서 망하기를 기다릴 수는 없습니다. 제도의...